2021.1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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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복음 선포의 기본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 두 명을 지명하시어"(루카 10,1)
열두 제자의 이름을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요. 그들의 부르심부터 활동상까지 복음서에 잘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파견하시는 "일흔두 명의 다른 제자들"에 대해서는 그저 숫자만 알 뿐 이름이나 활동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들은 서운할지 몰라도 저는 이 익명성에서 다른 의미를 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아 파견된 이라면 이 일흔두 명 중 하나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가능성입니다. 아울러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에게도 열려 있는 가능성이 되겠지요.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복음 선포의 여정은 아무 근심 걱정 도전 없는 꽃놀이 여행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의 강도 높은 비유에 의하면 순하디 순한 양들이 굶주린 이리떼 우리 안에 던져지는 극적이고 잔인한 장면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제 발로 안위가 보장되지 않고 목숨마저 위협받는 상황으로 걸어들어가라는 것인데, 거기에 더해 돈이나 여행 물품 등의 안전 장치마저 지니지 말라고 하시네요. 복음 선포 여행이 일반 출장이나 유람이 아닌 이상, 재물과 무기와 힘과 인맥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 말씀과 그분 섭리에 의탁하라는 의미일 겁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루카 10,5)
복음 선포자는 평화를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가장 자기다울 때 평화가 유지됩니다. 누구에 의해서 공격 당하고 훼손되고 파괴되면 이 평화가 깨져버리고 말지요. 복음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품으신 기대를 회복시키고 완성하는 하느님 말씀이기에, 누구를 만나든 평화의 축복으로써 상대의 창조적 온점함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갈망 가득한 마음을 말씀의 샘물로 적셔 주고 친구가 되어 주며 병자를 치유하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것 모두 누군가의 평화를 되돌려 주는 행위입니다. 복음 선포자는 평화의 건설자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루카 10,9)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복음 선포의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 강생하여 오신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는 우리 곁에 우리 가운데 성큼 들어왔습니다. 또 그 주님께서 파견하신 제자들로 인해 아주 가깝게 실질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중이지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복음 선포의 두 협력자를 언급합니다.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마르코는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이니 함께 데리고 오십시오."(1티모 4,11)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루카 복음사가는 바오로 사도와 선교 여행을 함께하면서 주님의 복음과 복음 선포의 내용을 기록하여 전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 복음사가는 사실 선교여행 중 바오로를 버려두고 떠난 적이 있어 나중에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결별하게 된 이유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합니다.(사도 15,37-39)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바오로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베드로의 협력자로 활동하면서 복음서를 집필하였지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의 인격과 가르침, 기적을 생생하게 전달할 열두 제자나 일흔두 제자들이 아직 살아 있을 때 누군가 그 역사를 집필하고 후대에 전해야 했지요. 복음사가 루카와 마르코는 사도들 곁에 머물며 훌륭히 이 사명을 완수했을 뿐만 아니라, 후대의 제자들이 대대로 선포해야 할 복음의 내용을 남겨 준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2티모 4,17)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통해 복음사가 루카와 마르코가 바오로 곁에서 어떤 마음으로 복음서를 집필했는지 알 수 있지요. 그들은 성령께 의지해 각자에게 맡겨진 복음 선포의 사명을 복음서 집필로 완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서를 통해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음을 접하고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살도록 초대한 것입니다.
"평화를 빕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넘치지 않는 이 축복의 인사를 자기 자신과 이웃과 온 세상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에게 전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우리와 스치는 그 누구에게라도 평화가 흘러가길 바라면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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