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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30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10.26.mp3

1.64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희망으로 초대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루카 13,19)
"그것은 누룩과 같다. ...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루카 13,21)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둘 다 이스라엘 가정에서 쉽게 접하는 흔하디 흔한 물질들이지요. 둘의 공통점이라면 너무 미소하고 흔해서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고 귀하게 취급되지도 않는다는 점, 그리고 자기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점, 또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유익이 된다는 점입니다.

겨자씨는 흙 안에서, 누룩은 밀가루 안에서 열과 수분과 양분을 만나 변형됩니다. 겨자씨는 상상할 수 없이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까지 깃들이는 거처가 되고,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여 여럿에게 생명을 선사합니다.

모든 이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내면에 선하고 고귀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지만, 극도의 죄악에도 쉬이 노출되어 탐욕과 욕정의 노예로 타인을 짓밟고 파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 주된 체험이 무엇이었는지, 어느 면에서 사람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인간관과 세계관, 신관의 기울기는 상당히 달라지지요.

세상을 너무 순진무구한 눈으로만 보는 것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도 회피일 따름입니다. 사람이 선하기만 하지도 않고 악하기만 하지도 않듯이 세상도 마찬가지니까요.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쉬이 눈에 띄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미소하고 무가치해 보이는 작은 것들, 작은 이들 안에서 볼 수 있는 시선을 지닙니다. 탐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모두 안에 숨겨진 겨자씨 같고 누룩 같은 하느님 나라의 씨앗에 희망을 거는 이들이지요. 실패와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고 기다리는 능력자여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 신비를 명료하게 표현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구원 역시 하느님의 나라와 같이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자판기처럼 즉각적인 결과물을 내주지도 않지요. 구원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지 않은 채 사력을 다해 믿고 기다리는 이 안에서 차츰 완성되어 갑니다. 희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희망할 줄 아는 이는 구원의 여정 안에 있습니다.


지금 사방이 온통 어둠에 둘러싸여 희망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더라도 온 힘을 다해 희망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니까요. 희망할 수 없는 상황을 견디며 믿음의 다해 희망하는 여러분,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온 존재를 걸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