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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29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10.2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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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루카 13,2)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3,4)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의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질병이나 사고, 장애나 죽음을 하느님의 징벌로 여겨온 이스라엘 백성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시려는 겁니다.


급작스레 닥친 사고나 병고를 추스를 틈도 없이 죄인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한꺼풀만 들추고 들어가면 우리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이 없는데, 누구는 모두 알 수 있게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고, 누구는 성인군자인 양 입을 싹 씻고 산다면, 과연 이기적이고 어설픈 우리의 죄에 대한 판단이 올바른 걸까요?  

"회개하지 않으면"(루카 13,3.5)
그렇다고 복음 속 두 사건의 피해자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그런 일들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에게 닥친 변고의 원인은 우리 영역 밖의 일이라는 걸 겸허히 인정하고 다만 하느님께 맡겨 드릴 일이지요.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사실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는 인간의 실존을 깨달은 이는 타인의 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심판자의 자리에 자신을 함부로 앉히지 않지요.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로마 8,6)이지 가십이나 뒷담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자신이 억장 무너질 일을 겪어도 곧 심판자이신 하느님께 넘겨 드립니다. 무지하고 편협한 자신의 심판이 스스로마저 멸망시킬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결과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이 겪은 비극적 사고와 억울한 죽음이 이 세상에서 당장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회개하지 않는 이에게는 언젠가 닥칠 하느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루카 13,8)
어쩌면 우리에게도 "잘라 버리라"는 사형 선고가 진즉에 내려졌을지도 모릅니다만, 인내심 많고 자애로운 포도 재배인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 덕에 지금 심판을 유예 받고 특별 관리를 받고 있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 전투에 승리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로마 8,9)
회개는 육의 법에 끌려가는 존재를 돌려 세워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매순간 하느님께로 방향을 돌리려 애쓰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의 지속적 회개지요. 그래서 그의 영혼은 선과 악, 영과 육의 전투가 크고 작게 벌어지는 치열한 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이에게는 하느님의 영께서 현존하시기에, 타인이 겪는 사건과 사고, 질병과 고통이 가십거리가 되기보다 연민을 자아내고 자신의 그것 또한 하느님을 만나는 지점으로 승화됩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루카 13,9)
성찰에 무디고 회개에 더딘 우리에게 주님은 이 관대한 유예의 시간이 그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흘려만 들을 수 없는 경고지요. 특별히 거름이 주어지는 지금 여기서, 회개를 위한 발걸음을 시작하라는 촉구로 들립니다.


우리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태여도 열매를 맺으리라는 주님의 기대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용기를 내도 좋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 회개의 여정을 멈추지 않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