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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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종살이의 영에서 하느님의 영으로 전환하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 13,14)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이 열여덟 해나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을 고쳐 주시자 회당장이 분개하며 말합니다.허리가 굽어 몸을 펼 수조차 없는 그녀의 모습을 하도 오랫동안 보아와서일까요? 연민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입니다.
타인의 불행이나 불편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자기 처지가 아니라서, 워낙 자주 봐 무뎌져서, 당사자가 힘든 내색을 안 해서,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여겨서 등등...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고통과 갈망을 단박에 알아차리십니다. 그날이 안식일이건, 장소가 회당이건 전혀 개의치 않으시지요.
사실 안식일은 생명을 위한 날이니 생명을 회복시키기에 더더욱 좋은 날이고,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회당은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여야 하니 더더욱 치유에 적합하지요. 율법의 문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통해서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6)
"안식일에는" 하면서 안식일의 의미를 축소하고 한정한 회당장과 달리, 예수님은 "안식일일지라도" 하시면서 허용과 확장의 표현으로 바꾸셨습니다. 율법 규정과 전통 관습을 대하는 예수님의 유연하고 관대한 자유가 읽히지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육에 따라 사는 삶과 영에 따라 사는 삶을 대비시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로마 8,15)
율법 아래 자신을 묶은 이는 그 문자에 집착하여 종살이의 멍에를 스스로 멥니다. 어쩌면 내용보다 형식을, 의미보다 글자를 추구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일 겁니다. 육을 따르는 삶은 마음의 소리와 영의 진동을 섬세히 살피거나 식별에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메뉴얼대로만 고집하는 삶은 자칫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종살이의 영은 금지와 한정의 표현으로 무장하고 어떤 여지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남이 그러는 게 귀찮아서이기도 하지요. 사안들을 고려해 적용하는 일에 괜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이유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진실에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까닭입니다. 종살이의 영을 고수하는 한 그는 아직 외딴섬입니다.
"안식일일지라도"
예수님은 그 책임도 함께 지실 것이기에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니까요.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르는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사고하고 결단하라고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루카 13,17)
군중이 느끼는 기쁨에 함께 젖어들어가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적의와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가련한 여인에게 해 주신 일을 자기 일처럼 느끼기에 기쁘고 감사하며 희망에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 순간 기쁠 수 있는 건 그들이 그 여인의 오랜 고통을 자기 것으로 연민했기 때문이고, 그 자신 역시 희망을 가져도 좋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일 겁니다. 서로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단순하고 소박한 군중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게지요.
사랑을 제한하고 헌신마저 규격화하는 종살이의 멍에를 벗고, 거룩한 사랑의 영을 따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성령 덕분에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받았으니, 그리스도의 형제요 공동 상속자인 우리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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