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족보에서부터 이방인 선조 어머니들의 피가 섞인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하신 메시아인 예수님이 목동들과 동방 박사들의 경배를 받았다고 전하면서, 이미 하늘 나라는 선민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 특히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마태 4,16)들에게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내비칩니다.
이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대피정을 마친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늘 나라 선포의 행업을 전해주면서, 첫 일성(一聲)이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였다고 말합니다. 하늘 나라가 더 이상 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그 어려운 율법의 완벽한 준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와 사랑의 삶을 통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 복음 선포의 장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방인의 갈릴래아, 카파르나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당시 선민의식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은 물론 이미 신자가 되어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활동을 네 가지로 요약해서 전해 줍니다. 그분은
-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 병자들을 고쳐주는 일을 하셨다고. (마태 4,23)
그분은 이 기쁜 소식을 당시의 랍비들처럼 그냥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가르치시지 않고, 직접 찾아다니시면서 전하는데 주력하셨습니다. 이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냉담자들이나 삶의 희망을 잃고 있는 이들이 기쁜 소식을 받아야 할 첫 번째 대상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물론 가는 곳곳마다 회당에서 기존의 유대인들을 위한 설교와 가르침도 계속합니다. 그릇된 선민의식을 바로 잡아주고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참 하느님의 자녀들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의 福音(기쁜 소식)을 선포합니다. 하늘 나라는 우리를 구속하고 힘들게 만드는 슬픈 소식이 아닙니다. 율법을 잘 못지키고 보속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그런 나라, 이 세상이 지옥과 연옥이고 저 세상이 천국이니 참고 살아야만 하는 그런 고통스런 나라가 아니라, '여기서 지금'(hic et nunc) 누구나가 회개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리고 체험하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기쁜 소식입니다. 과연 우리와 교회는 이런 기쁜 소식을 이웃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여전히 슬프고 고통스런 하늘 나라 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걸까요?
마지막으로 그분은 병자들과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십니다. 이들은 육신의 병고와 허약함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천형(天刑)을 받은 공적 죄인으로 여겨져 하늘 나라에는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병을 치유해 주고 죄사함의 은총까지 베풀어주시면서, 이들도 당당히 하느님의 자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가난과 질병, 소외의 고통에 시달리던 이들이 그분의 활발한 가르침과 치유를 통해 공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됩니다.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리하여 사람들이 ... 그분께 데려왔다."(마태 4,24)는 말씀처럼 관계의 사슬을 통해 확장되고 연장됩니다. 예수님만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가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들과 이를 보고 들은 이들이 또 자기네 주변에 있는 고통받는 이들을 주님 앞에 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연장, 확장의 현장이 곧 '지금 여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는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서 이 세상에 공적으로 그분을 드러내는 이들, 곧 '공현을 실현하는 이들'입니다.
이렇게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 하느님 안에 머물게 된 우리를 위해,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과 거짓 영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식별기준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1요한 4,2) 예수님이 육화된 하느님임을 믿지 않고 그걸 고백하지 않는 영은 거짓 영입니다.(1요한 4,3)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이 신비는 이제 하느님은 뜬구름 속에 머무르시지 않고 사람들 가운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영육간의 치유가 필요한 영혼들 가운데 머무르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강력한 초대입니다. 우리가 두 주간에 걸쳐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셨음을 크게 기리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벗님 여러분, 예수님은 바로 벗님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벗님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1요한 3,23-24 참조) 그런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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