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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날 권위주의가 타파됨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철통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정치가들이 민초들의 힘에 무릎을 꿇게 되고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의 동등한 인권이라는 본래의 모습으로 점점 돌아가고 있음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 편중되게 권위를 누려왔던 가부장적 서열주의도 무너져 남녀간의 차별, 노사간의 차별, 선생과 학생의 차별, 상사와 부하직원의 차별 등 직위와 기능의 차이가 인간이 공통으로 누려야할 권위에 차별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참으로 기뻐할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참다운 권위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부모의 권위, 스승의 권위, 정치가의 권위, 성직자의 권위가 점점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권위주의는 타파되어야 하지만 참다운 권위는 더 빛나야 합니다. 율법주의는 타파되어야 하지만 율법은 완성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마르 1,21-28)을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치심을 듣고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다고 전합니다. 하나는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마르 1,22)라는 반응과 또 하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마르 1,24)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하게 거부하는 반응입니다. 

두 번째 사람을 복음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마르 1,23)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회당에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더러운 영이 들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워하는 깨끗한 영혼입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라고 강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입니까? 아니면 놀라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입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까요? 만약 사람의 말을 들었다면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느님의 말씀이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시작하시기 이전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똑같이 회당에 있었습니다. 누가 건강한 영혼인지 누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인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이런 서로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서로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 것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빛을 받고 평소의 삶이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라고 해서 평소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 건강한 영혼이라고 해서 평소에 눈에 띄게 드러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살기 때문이고 그리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속 마음을 우리의 눈으로는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말씀’ 앞에서만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히브 4,12)라고 말씀하신 대로 마음 속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겉으로 볼 때에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이전까지는 아무도 그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마르 1,24)라고 말했기 때문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평소에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대로 살면 자기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는 아무 관계없이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서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금방 화를 내고 거부하고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의견만이 최고인양 조금도 다른 사람한테 양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복음에서 말씀하신 대로 사는 사람은 바보이고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평생 예수님과 아무 상관 없이 살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는 말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면서도 그분과 아무 상관없이 제 멋대로 사는 사람입니다.(마르 1,24)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란 반드시 신자가 아닌 사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신자라고 하더라도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일 수 있습니다. 회당에 모여 있다는 것은(마르 1, 21. 23) 평소에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입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평소에 전적으로 말씀대로 살아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말씀을 듣고는 놀라고 무언가 새롭게 깨닫고 새로운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오늘 나와 예수님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나의 삶과 별로 관계가 없다면 나는 '더러운 영'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그분의 말씀이 내 삶의 지표가 된다면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에 놀라고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영혼이 참으로 건강한 영혼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런 영혼이시라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