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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2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는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마르 2,23)고 하는데, 루카는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루카 6,1)고 좀 다르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르코는 "길을 내고 가면서"를 통해 안식일에 일을 하였다는 것을, 또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를 통해 또 이중의 일을 하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어겼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루카는 "밀 이삭을 뜯은" 행위와 그것을 손도 안 씻고 "비벼 먹었다"는 점에서 정결례를 위반하였다는데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안식일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지요.

요즈음은 큰일날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어릴 적에 소위 '서리'라는 것을 해 보신 적이 있나요?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한번쯤은 다 해 보셨을 겁니다. 그때만 해도 먹을 것이 귀한 때라 이것저것 훔쳐 따먹는 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요.

저는 국민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자두밭에 서리하러 갔다가, 친구들은 다 내빼고 어리숙하게 붙잡혀 나무에 묶여 혼줄이 난 적이 있답니다. 또 학교 실습지에서 무를 뽑아 먹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무를 입에 물고 벌을 선 적도 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나는 아름다운 옛 추억이지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늘 밀서리를 하다가 혼줄이 나네요. 그런데 예수님은 혼을 내시기보다는 우리 아버지처럼 변호해 주시네요. 재미로 하는 서리인데 뭘 그러냐고... 이보다 더 한 서리도 얼마나 많은데...

예, 예수님은 우리의 잘못을 꾸짖기보다는 우리 편에 서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랍니다. 오늘 설혹 누가 잘못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처럼 너그럽게 변호해 줍시다. 그래야 나도 잘못하거나 실수하게 될 때 너그러이 변호해 주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루카는 단도직입적으로 안식일 규정을 위반한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이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 6,2) 따지게 하고 있는 반면, 마르코는 이들이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께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하고 따지게 합니다. 예수님을 물고 늘어지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훌륭한 변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놓고 갈등을 빗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촛점을 맞추시나요? 물론 두 가지 다 중요하지요.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부정적 관점이고 꼭 해야할 일은 긍정적 관점입니다.

주일 날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이고 꼭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국회의사당 안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이고 꼭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이고 꼭 해야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데 중심을 두고 있고 그것을 문제시 삼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더 큰 죄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하지 못한 것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부모님께 화를 내고 불평불만한 것도 문제지만 부모님을 더 사랑하고 존경하고 더 감사하며 효도하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 내가 더 사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사람, 내가 더 이해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한 사람, 내가 더 받아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스런 사람은 없는지 한번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그들을 더 사랑해 주시고 더 위로해 주시고 더 축복해 주시기를 청하며 주모경 한번이라도 바쳐주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이 뭘 하지 않았다고,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동을 했다고 분노하고 단죄하기보다는 내가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더 너그러이 받아주지 못했음을 아파하며 기도하는 날이 되시길 빕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중심에 놓는 사상을 주창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7-28) 그렇습니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 차가 문제입니까? 사람이 문제입니까? 법이 먼저입니까? 사람이 먼저입니까?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기를 좋아하신 예수님이 꿈꾸신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람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래서 우리에게 당부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히브 6,12)고 말입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사람 냄새 많이 풍기는 벗님이 향기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끈기 있게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하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라고 초대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