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오늘도 마르코는 안식일 논쟁을 이어갑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에게 있어 율법 중에서도 안식일에 대한 규정이 중요하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을 말해 줍니다.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쉬어야한다는 규정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 쉬신 것을 기념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날로 삼아라."는 원래의 뜻과 취지는 어디로 가버리고, "일 해서는 안 된다."는 말마디에만 집착함으로써,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는 일이 아닌지 사안마다 해석을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먹고자고 다니는 일 등 일을 안 하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 문제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율법을 해석해 줄 전문가들이 필요했고 그들이 바로 율법교사들인 셈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넘어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과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좋으냐는 질문으로 바꾸면서, 안식일의 의미를 소극적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던 관례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해석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한쪽 손(루카는 굳이 오른쪽 손이라고)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정상적인 사회활동과 정상적인 생업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회당에 나와서도 마치 죄인인 양 뒷쪽 구석진 곳에 움츠려 있어야만 했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당당하게 부끄러워하지 말고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마르 3,3)고 하십니다. 사실 장애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무시당해야 할 죄인이 아닌데도 그들은 스스로 움츠려들고 또 사람들도 그들을 무시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사고 때문에 그를 돕기는커녕 사람을 살리는 사랑의 일까지 문제시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노기를 띠시고"(마르 3,5ㄱ),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보시고 "몹시 슬퍼"(마르 3,5ㄴ)하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에 얽메어 사랑하고 좋은 일을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의 그 닫힌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마음이 전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저 "손을 뻗어라."(마르 3,5ㄷ)고 하십니다. 그는 아마도 늘 자신이 없어 손을 감추고만 살았을 겁니다. 남이 보고 무시할까봐 스스로 죄인인 양 움츠리고만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치유는 자존감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옳습니다.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실로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마르 3,5ㄹ)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각자도 오늘 복음의 손이 오그라든 사람처럼, 감추고 싶은 약점이나 부끄러움 때문에 자신있게 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주님께서는 "손을 뻗어라." 하시네요. 그렇습니다. 약점이나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귀한 아들딸입니다. 자신있게 손을 뻗어봅시다. 그러면 우리도 치유되어 성한 몸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들 특히 나처럼 자신 없어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임하시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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