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의 두 가지 가르침을 전합니다. 잘 연결이 되지 않는 두 가지 비유라고 얼핏 생각되지만 함께 연결시킨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 4,21-22)
여기서 "마련이다"라든가 "되어 있다"는 표현은 당위성과 순리를 나타냅니다. 자연의 법칙 안에서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등불이 내뿜는 빛과 열기는 숨긴다고 숨겨질 수 없고, 감춘다고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꼭꼭 가리고 덮어도 새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빛과 열기가 자기 내부를 향하지 않고 외부를 향하기 때문입니다. 또 밝음과 열기를 제 안에 가두어두지 않고 외부로 발산하기에 그렇습니다.
빛은 빛을, 열은 열을 모읍니다. 작은 빛과 열기가 한둘 모이기 시작하면 빛의 광도나 온도가 딱 한두 배만 증가하는 게 아니라 더 크게 확산되고 상승합니다. 아마도 빛끼리, 열끼리 주고받는 반사광이나 복사열이 서로서로 증가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닐까 어림짐작 해봅니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4,25)
안타깝게도 이 말씀은 현대 물질만능주의, 자유경제주의, 무한경쟁시대에 딱 맞는 표현입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돈이 돈을 낳고 빈곤이 빈곤을 낳습니다. 이는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자본주의 오용의 부작용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이 도식이 영적 세계에서도 통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갈망은 하느님 향한 더 큰 갈망을 낳고 애타고 애달픈 간절한 사랑으로 이어져, 이를 어여삐 보신 하느님 자비로 자기도 모르는 새 그분 눈길 한 번, 숨결 한 번, 손길 한 번 두루 맛보며 어느결에 무럭무럭 자라나는 세계입니다.
이에 반해 영적 세계에 관심이 없거나 자신이 없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영혼은 갈망이 아닌 의무로, 사랑이 아닌 규정으로 절대자를 추구하기에 오류에는 덜 빠질망정 빛과 열이 점차 소실되어 빠져나갑니다. 사랑의 빛과 열을 쓸 일이 점점 없어지니 자연 도태될 수 밖에요. 늘 새로운 사랑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신랑 그리스도를 만나기보다, 사랑을 시작한 적도 없이 권태기를 사는, 뛰지 않는 심장과 차가운 영혼의 종교인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독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히브 10,19)가는 특권을 얻은 이들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던 휘장이 신이요 인간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의 제사로 활짝 열어젖혀졌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히브 10,20)
지금 우리는 광채와 열기를 품은 영혼, 뜨거운 피가 도는 심장을 지니고 "새롭고도 살아있는 길"에 들어서라는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빛이 빛을 받고 열이 열을 모아 더욱 열렬한 불길이 되겠는가, 아니면 그저 있는 희미한 빛과 온기로 현상유지만 하겠는가 선택의 기로입니다.
그런데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성생활에는 현상유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정지는 곧 퇴보를 의미하니까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마르 4,25)이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의 밭에 좋은 씨를 뿌려 하나둘씩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빛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비추어 주십니다.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간직합시다. 서로 자극을 주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히브 10,22-24)
묵시록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묵시 22,5)
그렇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어둠의 세력이 온천지에 범람하고 있어도, 결국은 복음의 가르침인 사랑과 정의, 공정과 평화가 승리합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복음의 기쁨을 살면서 빛이신 하느님을 반사하는 작다란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 빛들이 존재하는 한 어둠은 존재할 수 없을 테니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빛이 되어주고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그 초대에 "네" 하고 응답함으로써 참으로 행복한 날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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