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에서 우리는 영성생활의 길잡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마르 4,38).
예수님 주변에 아직 군중이 남아 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호수를 건너가자고 하십니다. 아직 예수님의 말씀과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있는데도 떠남을 선택하신 그분이 다소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비록 스쳐가는 언급이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하느님"보다 "일"에 더 몰입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고요히 주님 앞에 머물기가 더 어려운 이유입니다.
"일"과 "사람"에 파묻혀 있으면, 온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현장을 떠나는 게 마치 직무유기처럼 느껴지기 십상입니다. 식별이 필요하지만 대개는 절박해 보이는 일거리를 눈앞에 펼쳐놓고 '나 아니면 안돼, 일단 끝내고 보자, 하느님은 나중에 잠시...' 하는 생각을 불어넣는 유혹일 확률이 크지요. 악의 바람은 오직 하나,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놓는 것뿐입니다.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마르 4,36).
제자들은 군중을 남겨 둔 채 예수님을 모시고 갑니다. 그러자 다른 배들이 뒤따르지요. 우리가 "일"을 끊고 "하느님"을 선택할 때 군중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따라오도록 돕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를 통해 군중은 자기 자리에서 예수님 말씀과 손길을 기다리던 수동성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주님을 선택해 따르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그런데 하필 거센 돌풍이 불어 물이 배에 들이칩니다. 방금까지 으쓱했던 군중과의 교감에 미련이 남은 제자들에게 '이러느니 그들에게 봉사하며 뭍에 더 눌러있는 편이 나을 뻔 했다'는 불만과 후회가 몰려들기도 했을 겁니다. 제자들은 지금 내적 외적으로, 안팎으로 돌풍에 휩싸인 겁니다. 말하자면 통제가 안 되어 당황스런 상황에서 마음도 들쑤셔진 것이지요.
그러니 천하태평 주무시는 예수님이 못마땅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을 겁니다. 제자들의 말 안에는 "당신께서 하라시는 대로 했다가"라는 볼멘 후회가 행간에 스며 있는 듯합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마르 4,39).
외부적 상황은 물론 내면의 소용돌이도 내가 아무리 되씹고 곱씹은들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때 치료가 필요한 경우와 믿음이 필요한 경우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내적 고통이 후자에 해당한다면 이를 잠잠히 만들 수 있는 힘은 주님의 현존 뿐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말씀으로 외부적 상황을 잠재우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내면에 대고 안타까움을 토로하십니다. 그 안에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데도..." 하시는 속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안팎으로 고요를 체험합니다. 언제 그랬는지 싶게 모든 격정이 가라앉았습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려는 시련과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늘 담담하고 자신만만하다면 이미 성인 경지에 든 것이거나, 아예 영성생활을 시작조차 못 한 것이지요. 나약한 우리가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내외적으로 폭풍에 갇히면 그간 주님과 쌓은 신뢰와 경험도 백지처럼 되어버려, 번번이 두려움에 전복되어 휘청대고 무너집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다윗 임금의 숨은 죄악을 예언자 나탄을 통해 들추십니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2사무 12,10).
"몹시 업신여겼으니"(2사무 12,14).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특히나 더 사랑하고 총애하는 이의 죄이기에 당신 스스로 무시당했고 업신여김 받았다고 느끼시는 겁니다. 사람에게 범하는 죄가 결국 하느님께 범하는 죄임을 알겠습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사무 12,13).
다윗의 범죄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만, 이 한 마디로 모든 내외적 폭풍이 사그라집니다. 다윗에게 퍼부으시는 하느님의 격노는 물론 다윗 내면에서 들끓던 오염된 양심의 불안도 잠잠해집니다.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죄의 고백은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다시 되돌리는 것입니다. 이로써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히 질서를 찾게 됩니다.
사랑하는 벗님! 살다 보면 폭풍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외부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피할 수 없습니다. 질병, 실직, 이별, 사고, 손실, 박해, 오해, 소외, 상처, 두려움... 그런데 고통이 나름 이유 있는 사건을 통해 오는 것 같더라도, 많은 경우 하느님을 오롯히 향하고 사랑하려는 우리를 시련하는 힘일 수 있습니다.
이럴 폭풍에 휩싸여 죽을 지경이 된 우리보다 주님이 더 안타까워 애태우십니다. 그분은 결코 손 놓고 우리를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안에서 함께 출렁대며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폭풍을 잠재우고 고요를 회복하는 힘은 주님 현존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우리 믿음의 콜라보입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건너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하고 고요하지만, 폭풍 한가운데에선 늘 처음인듯 두렵고 힘겹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까지 주님의 이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어떤 돌발 상황에서라도 기억나도록 영혼 깊숙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주님 봉헌 축일 하루 전인 2월의 첫 날, 우리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이 말씀과 함께 귀하고 값진 봉헌의 날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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