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금요일에 우리는 예수님과 십자가 길을 함께 걷고 그분을 무덤으로 배웅했습니다. 성 토요일에는 밤에 드리는 파스카 성야 예식 전까지 낮동안 공식 전례가 없지요. 하지만 갑자기 부활 성야 독서로 건너 뛰어 말씀을 묵상하기에는 성 토요일의 의미와 영성이 너무 귀해, 주님의 무덤 곁에 머무르며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자고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성 금요일에 봉독된 수난 복음 마지막 부분(요한 19,38-12)에 함께 머물러 봅시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한 19,40)
예수님 주변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역할로 그분과 함께합니다. 공생활 기간동안 동반했던 제자들도 있고, '자기들 재산과 시중을 들던 여인들'(루카 8,3 참조)도 있습니다. 장례를 준비하며 그분께 값비싼 향유를 발라드린 여인들도 있고, 또 그분 죽음의 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원로, 사제,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도 있습니다.
오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육신께 마지막 지상 예우를 다하는 충직함을 보여줍니다. 드러내놓고 따르지는 못했지만, 다른 제자들과 달리 제도권 안의 인물들로 부와 학식과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갖춘 이들이어서 이와 같은 장례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존재는 성경 안에서 그다지 비중있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환경과 능력으로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주님을 위해 정성껏 봉사하는 것이 우리 각자에게 부여된 소명을 진정으로 사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형장인 해골터에 정원이 있었고 마침 거기에 새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냥 있던 것이 아니라 "마련되어" 있었다고 믿습니다. 성자께서 이 세상에 육화하실 때 '아무도 머무른 적이 없는 동정녀의 태'를 거처로 삼으셨듯이, 지상 삶의 마지막 거처가 "새 무덤"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이는 창조주와 한 분이시고, 창조 때부터 계셨던 주님께 피조물인 땅이 드릴 수 있는 가장 당연하면서 아름다운 예우일 겁니다. 그분의 피를 받은 땅은 이제 품을 활짝 열어 그분을 품습니다. 예수님 부활 후 곧 비게 되겠지만, 오늘 구세주를 잃은 우리에게 이 무덤이 있다는 것, 그리고 향료와 아마포로 주님께 사랑을 표현한 두 남성이 있다는 건 참으로 큰 위안입니다.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요한 19,41)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하느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우리가 "새 무덤"이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님의 가장 처절하고 처참한 순간 그분의 핏기 가신 몰골을 받아 안기 위해 둥그렇게 품을 여는 이름 없는 "새 무덤"이고 싶습니다. 누구도 보지 못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도, 그 모든 신비를 바위의 깎인 틈새마다, 거친 표면마다 깊이 각인한 채 영원히 침묵할 "새 무덤"이면 좋겠습니다.
성당 안의 치워진 제대와 텅 빈 감실, 가려진 성상이, 예수님을 잃은 우리를 더 공허하게 합니다. 더 이상 그분을 경배하러, 사랑을 속삭이러 갈 곳이 없다는 상실감이 성 토요일을 견디기 힘든 날이 되게 합니다. 이제 공허와 그리움을 가득 채워줄 주님 부활을 기다리며, 아드님을 잃으신 성모님의 마음도 헤아리며, 고요히 무덤 곁에, 무덤 안에 머무르며 주님의 현존을 찾는 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님의 침묵)
만해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오늘입니다. 그분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이제 밤새 불던 돌풍도 잦아들고 잔잔한 침묵만이 감돕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인간과 신의 처절한 싸움은 결국 사악한 인간의 승리(?)로 끝난 듯 보입니다. 니체가 말했듯이 "神은 죽었습니다." 신을 죽인 인간은 의기양양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죽음과 고통, 미움과 아귀다툼만 남았습니다.
이제 곧 조금만 있으면 진실이 밝혀집니다. 결국 인간이 지고 신이 이겼음을 보게 됩니다. 그게 부활 사건입니다. 부활(復活)은 신의 나라가 결국 승리함을 고백하고 경축하는 사건이요, "알렐루야!"는 그 축제의 주제가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인간이 제 아무리 잘 나도 결국은 하느님 손아귀에 있음을 믿으십시오. 내 나라를 구축하려 신을 죽이는 우(愚)를 범하지 마시고, 신이 우리에게 무상(無償)으로 거져 베푸시는 하느님 나라를 누리십시오. 그래야 벗님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신과 더불어 참으로 부활할 테니까요.
오늘은 조용히 침묵합시다! 하느님과 화해합시다! 부질없는 나의 욕심을 내려 놓읍시다! 그리고 오늘 밤에 참으로 기쁘게 "알렐루야!" 를 노래합시다. 그분이 부활하셨고 벗님도 부활하였기에 맘껏 기뻐하며 즐거워하십시오.
주님의 부활을 경축합니다. 벗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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