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무덤이 되신 주님 안에 푹 잠겨 사랑을 나눕니다. 그분은 내려가고 약해지고 목숨까지 내어주시어 죽으심으로 완전히 비워지셨습니다. 온전한 없음, '무(無)'가 되셨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빈 무덤을 당신의 없음으로 꽉 채우고 계십니다. 무덤은 빈 것이 아니라 없음, 비움이신 예수님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시면서 육신의 옷을 입으셨던 그분은 죽음과 부활로 더 이상 물질의 한계에 갇혀 계실 필요가 없으신 것입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그런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 무덤에 왔던 여인들에게 인사하십니다. 아직 부활을 못 알아듣는 인간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그들이 아는 모습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살아계실 때 분명 일러주었지만 그 말씀을 아직 기억해내지 못한 채 슬픔과 실의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당신 부활을 알리시려는 것입니다.
평안하냐고 물으시는 주님께서 평안하십니다. 이 인삿말을 듣는 우리도 배시시 입꼬리가 올라갈 듯 평안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첫 인사는 물음이라기보다 축복입니다. 우리가 '안녕하세요?' 하면서 진짜 안녕한지 안 한지 답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저 상대방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방금 여인들이 만났던 천사가 한 말을 예수님도 똑같이 하십니다.
"갈릴래아!"
그곳은 제자들 대부분이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던 근거지이기도 하고 예수님과 첫 만남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마태 4,15)로 언급되듯 예루살렘같은 정치 종교의 요충지가 아니라 그저 변방에 불과하지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근원으로 돌아가서 만나자고 초대하십니다. 뿌리는 우리를 첫마음에 대한 기억으로 열정을 새롭게 해주고, 부르심 받았을 때의 처지를 상기시켜 겸손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여기까지 온 아무것도 아닌 이들에게, 다시 거기서 새롭게 출발하자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부활은 각 개인의 존재와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대목입니다. 직접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살던 어부로 성급한 성격의 베드로의 입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구원 역사와 성부 성자 성령의 업적이 구약을 넘나들며 일목요연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십시오."(사도 2,14) 하고 담대하고도 당당하게 입을 여는 그의 모습을, 원래의 그를 이미 알던 이들이 봤다면 크게 놀랄 장면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존재와 행적, 사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내용 행간마다, 예수님과 함께했던 자기를 비롯한 제자들의 실제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땠는지, 수난과 죽음을 미리 알려주실 때조차 서로 무엇으로 다투었는지, 못 알아듣는 비유에 얼마나 난처했는지, 그분 사명을 정면으로 만류했다가 무슨 말까지 들었는지, 그리고 잡히셨을 때 두려운 나머지 어떻게 했는지...
이제 예수님의 스토리는 각 제자에게 자기의 스토리가 된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 역사가 자기 개인의 구원사가 된 것이지요. 제자들은 갈릴래아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루살렘까지 간 일들을 다시 갈릴래아로 돌아가 기억하고 성찰하고 인식하면서 진정한 부활의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사도 2,32)
이제 주님께서 부활하셨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성령의 힘으로 놀랍게 변모합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증인으로 나선 이에게 본 것만 말하고 심증이나 사적 느낌의 진술을 삼가라고 할지 모르지만, 부활의 증인, 신앙의 증인는 과학적,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어도 온 존재를 통틀어 체험하고 깨달은 모든 것이 증언의 내용이 됩니다. 우리가 인격신인 주님을 만나 여기까지 오면서 체험한 기쁨과 슬픔, 좌절과 희망, 죄와 용서 등 모든 은총과 부르심의 자취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재회, 해후를 통해 새롭게 정립될 때 우리는 진정한 증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갈릴래아로 돌아가 그분을 만납시다. 온도를 잃고 미지근해진 열정으로 의혹이 섞인 회색조의 중간 지대를 서성대고 있다면 이참에 각자의 갈릴래아를 떠올려 봅시다. 거기서 다시 주님을 만납시다.
우리도 엠마오를 떠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떠납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던 곳, 그분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 하느님 나라를 꿈꾸었던 곳,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뵙고, 두려움 없이 꿋꿋하게 하느님 나라 여정을 다시 시작합시다!
그분께서는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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