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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팔일 축제내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저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신 부활을 확인시켜 주시어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과정이, 보잘것없는 한 영혼을 기도하는 영혼, 당신께 머물러 통교하고 일치하는 영혼으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과 어찌 그리 흡사한지 경탄을 하며 머물렀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나고 서둘러 되돌아온 두 제자가 열한 제자, 동료들과 함께 모여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 "그들 가운데"(루카 24,36) 서십니다.

예수님을 잃은 날부터 시작해서 주간 첫날 여인들이 달려와 전한 빈무덤 이야기, 천사의 발현 소식,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증언 등으로 그들은 지금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누구는 믿고 누구는 의심하고, 누구는 안심하고 누구는 부러울 겁니다. 그러는 중에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십니다. 예수님 부활 이후, 승천 이후에도 그분 이름으로 모인 모든 공동체는 이처럼 예수님께서 중심에, 가운데에 계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사를 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평화의 인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염원과 같은 축복입니다. 오랜 유배생활과 식민지 생활로 피폐해진 그들에게 평화는 곧 하느님 나라의 표지니까요. 제자들 안에 술렁대는 의혹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안팎으로 평화를 빌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부활을 믿도록 한 계단 한 계단 접근하십니다.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루카 24,39)

"내"가 곧 너희와 지내다가 죽고 부활한 "그"임을 직접 체험하게 하십니다. 만지는 것, 살과 살이 닿고 감촉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감각하는 것은 참으로 친밀한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제자들에게 허용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부활의 확신과 더불어 예수님 몸에 흐르는 온기를 통해 그들 향한 마음의 사랑도 감지하길 바라시기 때문일 듯합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청하시지요. 예수님은 "구운 물고기 한 토막"(루카 24,42)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루카 24,23)십니다. 그동안 스승과 지내며 수없이 식사를 함께 했을 제자들은 드시는 모습만으로도 예수님이심을 확인할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루카 24,45)십니다. 당신의 실재를 확인시켜 주신 뒤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근거인 성경을 깨닫게 해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하시지요.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사실 아직 증인이 될 만큼 굳건해지지도 못했고 증거할 만한 일도 없었지만,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을 깨닫게 하시어 당신 증인으로 만드시는 과정은 이처럼 체계적입니다. 기도하는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양성 과정 또한 그러할 겁니다. 피양성자인 우리가 그 순간에 미처 깨닫지 못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한계를 아시는 그분은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속도와 방식으로 차츰차츰 우리에게 접근하시고 침투하신 후 점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만드시는 이 과정은 흡사 기도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영혼의 인격 한가운데 들어오셔서 현존하십니다. (사실은 갑자기 인생에 끼어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본래 계셨는데 어떤 계기로 당신 현존을 일깨우시어 의식하도록 하신 것일 겁니다.) 당신 안에서 누리는 평화를 선사하고, 직접 당신을 터치하게 허용하시는데, 이 신비로운 접촉은 영혼의 갈망을 부채질하지요. 또 그분은 기도 초심자에 맞게 처음에는 감각부터 시작해서 여러 경로로 당신이 살아계신 주님임을 드러내셔서 영혼이 주님과 인격적으로 더 가까와지게 끌어당기십니다. 그리고는 처음에 뭣도 모르고 주님께 이끌린 영혼의 눈을, 마음을 열어주시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인간적 지식이 아니라 사랑에서 출발한 신적 지식을 채워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하는 영혼은 주님과 나누는 사랑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지 않아도, 큰 소리로 드러나게 외치지 않아도 그는 사랑의 증인입니다. 그가 기도의 영혼, 사랑의 영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일은 하느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그러므로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진정 기도하는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또 진정 기도하는 영혼이야말로 부활의 증인입니다. 부활을 목격한 마리아 막달레나부터 시작하여 부활 복음들에 담긴 표상들은 셀 수 없습니다.

그 출발은 단순합니다. "치유받은 불구자가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사도 3,11)을 때, 온 백성에게 다른 증거나 증인이 필요 없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분 곁을 떠나지 않을 때, 우리의 현존 자체가 증거이고 증언이 될 것입니다.

오늘 그분 안에 머물며 그분이 빌어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그분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며 친교를 나누었던 그 추억을 새롭게 함으로써 살아계신 그분의 참 증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