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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30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진정한 하느님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습이 드러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루카 13,31)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예수님의 안위를 염려해 주는 듯하지요. 예수님께 적대적인 바리사이들 중 그나마 호의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일 수도 있고, 민중의 신뢰를 한몸에 받는 예수님을 자기들 눈앞에서 치워버리려는 질투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께 겁을 주고 도망치게 하여 수치를 안기려는 음모일 수도 있지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의지를 밝히십니다. 정면돌파라 할까요? 역사 이래 예루살렘이 박해하고 죽인 예언자들의 운명을 예수님 자신도 기꺼이 받아들이신다는 선전포고와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맞서야 할 상대는 헤로데나 빌라도, 바리사이나 백성의 원로들, 사제 계급 등 일개 사람이 아니라 인류를 도탄과 어둠에 몰아넣는 악의 세력임을 그분은 잘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걸어오셨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뚜벅뚜벅 걸어가실 길이란, 아버지께서 인류를 죄악과 죽음에서 건져 주시기 위한 구원의 길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루카 13,34)

이스라엘을 하느님 날개 아래로 모으려는 예수님의 노력은, 그러나 모든 이에게 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임을 그분은 잘 아십니다. 예수님의 의지가 아니라 유다인의 의지 때문입니다. 백성의 고통이나 갈망과는 별개로 온갖 기득권을 쥔 채 율법의 문자에 갇힌 그들에게 새로운 길은 위험 가득한 모험일 따름이니까요.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에페 6,12)

사도는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실존적 한계와 어려움을 꿰뚫어 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사람에게서 도전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요. 그가 꼭 나의 반대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합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종종 장벽이 부딪히기 일쑤입니다. 그러면서 쉽게  사람에게 화살을 돌려 맞서게 되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유혹과 시련을 안기는 존재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의 어둠과, 그에 반응하는 내 안의 어둠입니다. 두 존재 안에 또아리 틀고 있는 죄악과 상처와 탐욕이 작용하여 소요를 일으키고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분노하며 곱씹고 되씹는 사이 우리 마음의 어둠은 점점 커지고 주님의 자리는 점점 줄어듭니다. 영혼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고 싶어하는 악이 이를 잘 알고 노리는 것이지요.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힘으로 악에 맞서야 합니다. 우리가 쥐고 있는 성령의 칼이 곧 말씀입니다. 어둠으로 우리를 잡아끄는 악에게 말씀은 매우 강력한 무기입니다.

만남과 사건, 사람들 안에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두려움이 커질 때, 그날 내게 다가오신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대응법입니다. 어둡고 불결하고 성난 생각들에게 관심을 주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떠올려 되뇌이며 머무르는 겁니다.

그런데 쉽지는 않습니다. 악은 그리 순순히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니까요. 끈질긴 악의 힘에 대항하면서 한두 번 해보고 안 된다고 실망해 포기하지 말고, 말씀이 어둠을 걷어낼 때까지 말씀에 머물러야 합니다.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빛이 영혼을 적셔올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악에 대항하는 지혜와 용기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머무름이 곧 기도이기에, 그렇게 배우면서 우리는 성큼 하느님 가까이 다가가는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의 에페소서 대목 안에는 영성 생활을 위한 지침이 가득하니 여러 차례 찬찬히 정독하면서 머무르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사도가 전투에 비길 만큼 치열하고 교묘합니다. 용기와 굳셈과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지요.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그 어떤 유혹과 협박과 회유에도 예수님께서 견지하신 참 예언자의 길이 그 답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우리 역시 꿋꿋하게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걷고 있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동행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