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화요일( 사도16,22-34) (요한16,5-11)
제1독서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23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25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26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27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28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29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32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33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34 이어서 그들을 자기 집 안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복음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5-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5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6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별을 말씀하십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든 사건이지요. 예수님은 제자들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찬"(요한 16,6) 것을 헤아리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떠남을 말씀하시는 건 "당신이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이롭기 때문입니다."(요한 16,7 참조)
예수님과의 분리는 제자들 소명의 근저가 뒤흔들리는 불안을 야기합니다. 가족과 생업과 기존 종교 질서를 버리고 따라나섰던 분이기에, 그동안 쌓인 정도 있거니와, 아직 홀로 설 준비도 안 되었고, 또 뭔가 손에 잡히는 결실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스승이 떠나신다는 사실이 충격에 가까운 근심을 불러올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엇이 제자들과 세상에 더 이로운지 아십니다. 비록 고통스러울망정 당신이 그들을 떠나가셔야만 세상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걸 아시기에 그렇습니다. 또 당신이 보내실 보호자 성령께서 세상에 현존하시며 성부의 뜻과 성자의 가르침을 일깨우고 기억시켜 온전한 구원을 향해 가도록 도우시리라는 것도 아시기에 그렇습니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힐 것이다."(요한 16,8)
세상은 율법을 근거로 죄를 재단하고, 의로움을 판단하며 심판을 자행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으면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믿는 이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지요. 곧 오실 성령께서 이 모든 가르침을 밝혀 주신다고 말입니다.
제1독서는 필리피에서 바오로 사도 일행이 겪은 수모를 이야기합니다만, 어쩌면 이 일화의 주인공은 바오로와 실라스가 아니라 "간수"인 것 같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군중의 공격을 받고 정당한 법적 절차도 없이 행정관 지시로 매질을 당한 후 감옥에 갇히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흔들렸다."(사도 16,26)고 합니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사도 16,26)고 하네요. 참 의미심장한 현상입니다.
사람은 종교든 이념이든 직업이든 그동안 믿고 의지하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에 들어설 때, 마치 자기를 둘러싼 세계가 깨지는 듯한 충격을 받습니다. 자기를 보호해 주던 든든하고 안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힘겨운 과정이 시작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밑바탕부터 뒤흔들리고 비틀리는 지진과 요동은 묶여 있고 갇혀 있던 모든 제약과 구속에서 존재를 해방시킵니다. 이는 오늘의 주인공인 간수가 만나게 될 새로운 길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간수는 사슬도 풀리고 문도 열렸는데 달아나지 않은 바오로와 실라스에게 놀라 그들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구원'에 대해 묻습니다. 이 와중에 어떻게 구원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사람은 극심한 충격과 위기의 순간을 맞닥뜨리면 그동안 존재 가장 깊숙한 곳에 간직해 두었던 질문과 대면하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간수에게는 구원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것이고, 무고하게 매맞고 갇혀서도 하느님을 찬미하고, 도망칠 기회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믿는 이들"에게 존경심이 포함된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바오로의 대답은 간결하지만 모든 걸 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밝혀주신 "죄와 의로움과 심판"의 열쇠, 곧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간수는 그날 밤 그 시간에 그들을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고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사도 16,33) 지진이 일어난 바로 그 밤에 그들이 서로에게 행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간수는 사도들이 육체에 입은 상처를 씻어 치유해 주고,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수와 그 가족의 죄의 상처를 씻어 깨끗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누어 형제적 친교를 이루고 "기쁨"을 나누며 성령의 현존 안에 하나가 됩니다.
제게는 간수의 세례가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감옥을 지키는 간수라면 세상의 "죄인"를 통제하고 다루는 준법자, 즉 "의로움을 수행하는 이"고, 그 기준은 세상 법에 의거한 "심판"입니다. 이것이 그가 순응해 살아온 질서였지요. 그런 그가 지진과 자결 시도, 사도들과의 만남을 통해 변한 것입니다.
사실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사도 16,23)받은 사도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서 치유해 주고 세례 받고 음식을 나눈 것은 엄연히 규정 위반이고, 세상 눈으로는 "죄"가 분명합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목숨처럼 지켜온 규정의 안팎을 넘나드는 자유인이 되게 했을까요? 어떻게 그가 세례를 통해 세상 질서에서 하느님의 질서로 건너가고,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한 세상의 편협하고 국지적인 한계를 뛰어넘게 되었을까요?
간수로서의 경험상 그는, 강제로 갇혀있던 이들이 통제가 풀리면 자유를 찾아 도망칠 거라고 생각해 왔겠지요. 그래서 죄인을 지키는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단죄하려 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지진으로 외적 통제(감옥 문, 사슬)가 해제된 상태에서도 자의로 감옥을 벗어나지 않고 머무르는 사도들에게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억압과 구속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는 자유, 감옥 안에 있건 세상 한복판에 있건 누리는 진정한 내적 자유는 바로 구원의 표지니까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요한 16,7)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예수님께서 당신이 떠나는 것이 이롭다고 하십니다.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해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기쁨과 평화와 자유를 잃고, 웃음도 미소도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를 일깨워 주시는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법과 규정, 관습은 하느님의 법 안에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법규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하나로 요약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 안에서 마음껏 사랑하면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 모든 법은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도 사랑 때문에 아픔도 수고도 마다않는 축복 누리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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