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1주간 수요일.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 교부들의 말씀 묵상✝️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15,30)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을 예수님의 발치에 데려다 놓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산에 오르시어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건강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갖가지 병을 앓는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 앉아 계신 이 산을 교회로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의 나머지 부분 위에 세워졌으며,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그리로 옵니다. 산상 설교 때처럼 군중을 따로 떼어 놓고 제자들만 그곳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정말 많은 군중이 모였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귀가 먹었거나 갖가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앉아 계신 산으로 올라온 군중을 보십시오. 그들 가운데는 약속된 것들을 듣지 못하는 귀먹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러는 영혼의 눈이 멀어 참빛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더러는 이성에 따라 걷지 못하는 다리저는 이들입니다. 더러는 사지가 성하지 않아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저마다 영혼이 고통받고 있는 이들 각자는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는 산으로 군중과 함께 올라갑니다.
예수님의 발치에 다가가지 않는 이들은 치유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분의 발치에 데려다 놓은 이들은 치유를 받습니다. 가장자리까지 온 이들, 곧 그런 것들을 얻기에 자신이 합당치 못하다고 느껴 그리스도의 몸 가까이까지만 온 이들도 치유를 받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흔히 교회로 불리는 무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저기 예비신자들이 보입니다. 저들은 말하자면 변방에 데려와 놓인 몸의 지체인 사람들 뒤에 와 있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몸, 곧 교회의 발치까지만 와 있는 것입니다. 그곳으로 온 그들은 귀가 먹거나, 눈이 멀었거나, 불구이거나, 몸의 어디가 굽어 있습니다. 때가 되면 그들은 말씀’의 뜻에 따라 치유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이 사람들은 군중과 함께 교회로, 곧 예수님께서 앉아 계신 산 위로 가 그분 발치에서 치유받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군중은 그곳에서 일어난 변모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던 사람들이 더할 수 없이 온전한 상태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오리게네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3
하느님 바깥에 있는 것은 무일 뿐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6).
우리는 하느님의 무와 인간 지성의 무를 치유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무가 우리의 한 부분이라면, 아무개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한 부분이다. ‘지성은 존재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 지성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자유로이 부정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바꾸어서, 지성은 존재를 알 수 있음은 물론이고 비존재도 알 수 있다. 지성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지성은 하느님처럼 세계를 창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 왔다.
지성이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무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정은 초월의 형식이다. 그것은 아무개의 이것이나 저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하느님을 이것이나 저것으로 표현하기를 거부한다. 부정의 길은 지성이 무이며,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하느님의 형상인 우리도 어느 정도 “부정의 부정과 거부의 거부”를 할 수 있다.
이 황홀한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 바로 앎이다. “앎은 ’밖에’ 있는 것, 곧 존재와 맺는 황홀한 관계다." 그것은 신성의 내부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에는 “지금 여기”와는 무관한 순수한 앓이 있다. 엑카르트가 말하는 순수한 앎에는 의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우리의 마음과 의지가 하느님 안에서 황홀하게 합일될 때. 은총은 모든 아름다움올 •• 영혼의 황국 속으로 직접 부어 넣는다. 하느님 나라는 사람의 영혼이며, 바로 거기에서 ‘순수한 앎’이 일어난다. 바로 거기에서 복이 일어난다. 그 복은 행복선언에 약속되어 있는 복, 곧 “하느님을 뵙는 복”(마태 5,8) 이다. 바로 거기에서 하나 됨이 보인다. 하나 됨이야말로 복이다. 하느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영혼의 복이다. 그것이야말로 영혼의 아름다움이자 영예다.(290)
✝️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
세계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츤
제 2부 중세 그리스도교
제 3기 : 1050 ∼ 1300년
중세 중기 교회의 전성
제 9절: 인노첸시오 3세부터 보니파시오 8세까지의 교황직
인노첸시오 3세:
인노첸시오는 교회 내적인 면에서 교회법을 어긴 주교 선거에 단호히 개입하고, 이른바 “중대 사건”을 교황청에 유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위권을 관철하였다. 교황청의 행정관청, 수도회, 성직자의 개혁들을 통해 질서를 배려하였다. 그의 “직무상”(ex officio) 부당한 고위 성직자나 주교들을 교황청의 종교재판소로 끌어들여 다스렸다. 이단자에 대해서는 우선 부드럽고 관대한 태도를 취했고, 그의 평화적 개종 시도가 실패하고 또한 그의 사절인 시토회 소속인 가스텔나우의 베드로가 남부 프랑스에서 카타리파에 의해 살해되자(1208.1), 그는 1209년에 십자군을 조직하였다. 이 시도가 무섭고 참으로 부끄러운 유혈로 진행된 데 대한 책임은 교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첫째로 교황사절 아르날두스 아말리치와 몽포르의 백작 시몬의 광신에 있었다.
인노첸시오가 교회 내의 청빈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 의의를 확고하게 인식한 것은, 그의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되어 남을 것이다. 그는 롬바르디아의 억겸파들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돌보았고(1201), “가톨릭의 가난한 자들”이라는 단체를 창립하였다(1208).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씨시의 프란치스코가 1209/1210년에 그의 작은 공동체에 대한 교황의 인가를 간청하고자 로마로 왔을 때, 그를 친절하게 맞이하였다. 탁발 수도회는 후에 교회의 가장 강력한 발판이 되었다. 인노첸시오는 권력을 확장하는 모든 과정에서도 내면 깊이에서 무엇인가 공통되는 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것은 그 자신이 결코 떨어진 적이 없는 부와 사치로부터의 내적인 거리였다.
그가 1215년 11월에 약 500명의 주교와 800명의 수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할 수 있었던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그의 교황 치세에서 최고점을 나타냈다. 그것은 전 서구 그리스도교의 위압적인 열병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세의 절정에서 교회생활의 유례없는 정점이었다. 개혁 결정들은 교회의 내적 쇄신과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고, 그후 관구회의와 교구회의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실체 변화 교의의 신조 결정과 매년 부활절의 고해와 영성체 규정은 영속적인 것이 되었다.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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