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알라반의 말씀사랑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와 벗이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친가족처럼 형님-아우, 언니-동생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참 멋지겠지요?
저는 그런 점에서 참 복이 많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훌륭한 분들과 많은 친분을 맺고 살아가니까요.
근데 무엇보다 신나는 일은 예수님의 친구요 형제라는 것, 그리고 그분의 가장 멋진 작은형제요 만인의 형제였던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형제란 사실이지요. 그러다보니 그분들이 맺어주시는 또다른 수많은 멋진 형제들도 있지요. 벗님들을 포함해서 말이죠.
벗님은 어떠시나요? 내가 형-동생, 형님-아우님, 엄마-이모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내 피붙이 가족 친지밖에 없나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벗님을 당신 동생이요 누이로 삼고싶어 하시네요. 신나지 않아요? 그런 분의 친구가 되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나와 형제가 되어 주시겠다니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공간이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밖에"(마르 3,31)와 "그분 둘레"(3,32) 그리고 "당신 주위"(3,34)입니다. 크게 외부와 내부로, 그리고 내부에서는 주변부와 바로 옆으로 동선이 그려집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있고, 예수님을 찾는다고 전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곁에' 모여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을 향해,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3,34) 하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주위로 몰려와 당신의 말을 듣고 머무르는 이들에게 혈연과 친족의 경계를 넘어,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의 지위를 허락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곧 이어서 당신과 한 가족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덧붙이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3,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참 어려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고 단순합니다. 즉, 열일을 제쳐두고 사랑하는 이 곁에 머물러 그분 말씀을 듣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라 하시니까요.
물론 육신적 필요와 가족 생계의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하는 "몸"을 지닌 인간으로서, 모두가 늘상 주님 곁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만, 주님 곁에 머무른다는 것의 여러 차원을 생각한다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까지 시간과 공간, 에너지 모두를 봉헌해 주님 곁에 머물러 사는 삶도 있을 수 있고, 또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도 있습니다. 주님께는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삶이 없기에, 예수님께서는 그중 어떤 삶의 형태도 배제하지 않으실 겁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당신의 뜻"(히브 10,7.9), 즉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셨음을 일깨웁니다. 그런데 "당신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위해 미리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은, 일반 사제들이 속죄를 위해 바치는 제물이나 예물이 아니었습니다."오히려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히브 10,5)
그 어떤 값지고 훌륭한 예물이나 짐승의 살과 피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바치실 "몸"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
사실 우리가 예물이랍시고 바치는 헌금이나 자선금은 물론, 우리의 재능이나 시간, 에너지, 목숨까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 편에서는 엄청난 희생을 바치듯 생색내며 드리는 것들이, 실상은 진작에 주신 분께 제 때가 되어 되돌려 드리는 수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 10,10)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몸"을 바치심으로써 죄에 물들어 질척거리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고, 또 하느님과 하나이신 당신 뜻이기에 온전히 하나되어 이룩하신 순명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몸" 덕분에 우리도 그분 곁에서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마르 3,35)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몸" 역시 주신 분께 고스란히 되돌려 드릴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를, 그리하여 인류와 세상에 물든 죄와 고통과 눈물 자국을 닦아내어 "거룩하게" 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마태 6,10) 기도합니다. 또 매일 기도에서 나갈 때 "저희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며 행동하지 않고, 언제나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공동체 기도서, 나가는 기도) 하고 기도합니다.
오늘 이렇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랑하는 나의 벗님이요 형님인 예수님 곁에 머무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분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가 됩시다. 그리고 우리의 맏형이요 오빠이신 예수님처럼 우리의 한 몸을 바쳐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다짐합시다.
이런 초대를 받은 벗님에게 축하드립니다. 멋진 형님, 멋진 오빠와 함께 복된 삶을 만들어 가시길 축원합니다.
▶작은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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