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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주간 화요일 / 반영억 신부님 ~

1월 28일 연중 제 3주간 화요일 (마르3,31-35)

 

○ ▥ 히브리서 10,1-10

● ✠ 마르코 3,31-35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의 복음 묵상 (다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한번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끊을 내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혹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부자의 관계를 단절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핏줄로 맺어진 연결 고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는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하고 말하였더니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반문하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3,35). 라고 하셨습니다.

 

얼핏 보면 핏줄로 맺어지는 관계를 무시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도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참된 가족이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근처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을 엮어가야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공동체를 형성하고 결속시키는데 초석이 되는 것은 혈연, 지연, 학연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태어난 모든이와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부모 형제, 자매의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형제님, 자매님! 하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무늬만 형제자매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는 태양이 형님이요, 달이 누님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몫을 다하였을 때 그 모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는 “하느님은 영이시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영이시니 영적인 분을 만나려면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을 떠서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영적인 관계가 먼저입니다. 어떤 외적인 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이 우선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면, 혈연이나 지연, 학연을 먼저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아직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은 탓에 “예수님께서 미쳤다”, “악령이 들렸다”(마르3,22) 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회당으로 왔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기적을 믿었지만, 그런 능력을 어디서 받았는지 의심하였습니다. 결국 육친의 가족은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눈뜬 가족은 예수님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하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마리아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족입니다.

 

가끔 어떤 사람은 “가족을 먼저 챙겨야지 성당을 우선하면 되겠느냐?” 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당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성당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가족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혹시 누가 가족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더더욱 성당에 나와서 주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신앙과 삶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나의 가족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이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한마음 한뜻을 이루고 있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핑계로 가족에 소홀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반영억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