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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3주간 목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사순 제 3주간 목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하느님의 나라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어느 현자의 두 한자성어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역시 하느님을 믿는 마음의 자세가 이러할 것입니다.

“묵이성립(黙而成立)”; 묵묵히 견디다 보면 언젠가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불언이신(不言而信)”; 말이 없어도 믿는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조급하지도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절로가 아닌 열린 마음에 간절하고 진실한 내외적 분투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참으로 개방적 자세를 말해 줍니다. 문제는 바로 자기에게 있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초대받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내 안으로 초대해야 한다. 마음을 얻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부터 꺼내라.”<다산>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논어>

 

 

 

완고하게 굳어진 내중심에서 벗어나,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충고입니다. 정말 문제는 내안에 있고 인간공통의 문제는 바로 무지입니다. 참으로 고질적 마음의 병이 무지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도 무지의 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이런 무지의 대한 답은 부단한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미사전 참회기도는 늘 반갑고 고맙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무지의 치유에 날마다 미사중 이 참회보다 더 좋은 기도도 없을 것입니다. 사순시기 아침성무일도시 나오는 유명한 초대송도 참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미사중 화답송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무디어지고 굳어진 완고한 마음이 바로 무지의 병입니다. 오늘 말씀 주제도 우리의 무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무지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 될 것이다.”

 

 

 

참으로 무지에서 벗어난 구체적 회개의 길을 뜻하는 두 동사가 “들어라”와 “걸어라”입니다. 날마다 매순간 깨어 부단히 듣고 걸어야 함을 배웁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개탄하시는 말씀도 얼마나 치명적인 무지의 완고한 인간 현실인지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 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나는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보냈다.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이런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에는 참된 회개가 아니곤 답이 없습니다. 여전히 반복되는, 또 악화되는 인간 무지의 현실입니다. 무지, 무식, 무도한데다 사악하기까지 한 사람이라면 정말 답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떠난 업보요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바로 이런 무지의 모습은 오늘 복음에서도 반복되며 오늘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광야여정중 사람이 하느님을 떠나 회개가 없어 자기를 잃을 때 괴물도, 악마도, 야수도 될 수 있습니다.

 

 

 

어제 수도원을 찾았던 분의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수도원에 “숨을 쉬러 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정상적으로 살기가 힘든 세상살이인지 깨닫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극단으로 굳어져 광기적이며 배타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 역시 무지한 인간의 전형입니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을 곡해하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정곡을 찌릅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영리한 사탄이 내적분열로 망하고 무너지는 그런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이며, 예수님의 구마행위는 순전히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활동과 구마활동과 더불어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작금의 극단의 내적분열로 치닫는 현실을 보면 사탄보다 더 어리석은 무지의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나라든 공동체든 개인이든 외적의 침입보다는 언제나 내적분열로 망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참으로 내외적 분열을 막고 악마의 유혹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가장 힘센 분 예수님을 모시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삶은 평생 영적전쟁이요 주님과 함께 주님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전사’로 살 때,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의 전사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 친히 당신 편에 설 것인지 반대편에 설 것인지 우리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자주 성찰할 바 예수님편쪽에 서있는 가입니다. 늘 예수님 편에서서 예수님 중심의 삶에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여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회개의 삶, 통합의 삶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부단한 회개와 더불어 날로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질 때 무지의 치유에 영적승리의 삶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