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4주간 목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듣고 싶어도 들려주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가 없고,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보여주지 않으면 결코 볼 수가 없듯이, 드러내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계시가 있다 치더라도 그에 대한 응답이 없이는 또한 믿음이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증거 하십니다. 먼저 알려주고, 계시해주고,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들었고, 예수님 행적의 표징을 보았고, <성경>을 연구하였지만, 혹 예수님을 알았을지는 몰라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마음을 열지 않은 까닭일 것입니다.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코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완고함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불신앙이라 부릅니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할 때, 우상숭배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완고함은 곧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을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채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로마 1,21-23)
사실, 이러한 우상숭배를 <예레미아서>(5,7)에서는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으로써 ‘영적 간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제키엘서>(23,27)에서도 야훼 외에 것을 찾는 것은 ‘영적 간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정배이신 주님이 아닌 우상을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완고함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따르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이 사순절, 우리 마음 안에 자기 생각을 앞세우는 완고함을 버리고, 주님을 위한 마중의 시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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