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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사순 제 5주간 화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사순 제 5주간 화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어릴 때 읽었던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꾼은 선녀가 목욕하는 틈을 타 그녀의 옷을 숨겼습니다. 결국, 선녀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무꾼과 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나무꾼이 뒤늦게 선녀의 옷을 돌려주자, 선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과 방법으로 누군가를 붙잡아 두려 할 때 결국 진정한 사랑을 이루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선녀가 나무꾼 곁을 떠난 것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사랑이 강요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국에 먼저 와서 직장생활을 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려는 여학생의 어머니와 친구 사이였습니다.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청년은 여학생과 그녀의 어머니를 공항에서 맞이하고 숙소로 안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돌아와 보니, 차의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여학생의 가방이 도난당했습니다. 가방 안에는 중요한 여권, 돈, 핸드폰이 들어 있었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 여학생을 위해 청년은 발 벗고 나서 도왔습니다. 영사관을 찾아가 여권을 다시 발급받을 수 있도록 돕고,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인연이 사랑으로 자라났고, 여학생이 학업을 마친 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서는 나무꾼이 선녀를 속여서 함께했지만 결국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반면, 청년과 여학생의 이야기는 나눔과 배려로 시작된 만남이 아름다운 결실을 보았습니다. 이 두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진정한 사랑과 관계는 강요하거나 속임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나눔을 통해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강제로 붙잡아 두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며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원망하다가 불 뱀에게 물려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달게 하셨고, 뱀을 바라보는 자는 모두 살아났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탓에 죽어가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따른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무꾼처럼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과 행복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으로 맺어진 관계는 결국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강요된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낮아지고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나무꾼의 방식이 아니라, 청년이 여학생을 도운 방식과 같습니다. 청년은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거나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내어주며 헌신적으로 도왔고, 그 희생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피어났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나무꾼처럼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맺은 관계는 희생과 나눔을 통해 자라나는가, 아니면 억지로 붙잡아 두려 하는가? 나는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바라보며 신뢰하는 믿음을 가졌는가? 사순 시기는 우리의 신앙과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참된 구원과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살아 숨쉬기를 바라며,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며,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돌아봐야 합니다. 혹시 나의 뜻대로 누군가를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속박하려 하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다가갈 때, 우리는 하늘나라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