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선(바오로) 신부님 (592) 썸네일형 리스트형 ~ 사순 재 3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루카 18,10)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앞에 선 두 유형의 사람을 만납니다. 당시 열심하고 의로운 이의 대명사격인 바리사이와 죄인의 대명사격인 세리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루카 18,11)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루카 18,13) 하느님 앞에서 바리사이는 자기의 공로로 당당하고, 세리는 자기의 부족함에 움츠러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스스로의 결백과 의로움에 자신감이 넘치고, 세리는 자기 죄로 눈도 못 들 만큼 하느님께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오 하느님 ... 제가 ... 와 같지 않으니 감사드립니다. 저는 ... 바칩니다."(루카 18,11-12) "오 하느님.. ~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오상선 신부님 ~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주님의 대축일이기도 하고 성모님의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인류 구원의 수혜자인 우리 모두의 대축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벗님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 어제 우리는 하느님 친히 당신의 이름, '야훼'(나는 있는 나다)를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것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구약의 하느님 야훼라는 이름이 이제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좀더 구체화됩니다. 그냥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이 되십니다. 그 예고를 오늘 듣습니다. 예고편을 보고나면, 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싶게 하지요. 때론 예고편만 보아도 재미있지요. 오늘 우리는 인류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영화의 예고편을 봅니다. 제목을 어떻게 달면 될까요? . 예고.. ~ 사순 제 3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예수님의 치유로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됩니다. 병 들어 잃어버렸던 것, 훼손되었던 것을 치유하고 되돌려 주는 일은 새 창조, 곧 하느님의 일인데, 어떤 이들은 마귀짓으로 간주하고 어떤 이들은 다른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들의 태도는 믿기 위함이 아니라 어떻게든 믿지 않으려는 안간힘에 가깝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말 못해 고생하던 사랑하는 형제가 놀랍게도 말을 하게 되었을 때, 함께 축하하고 기뻐한다면 이미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것이고, 마귀짓으로 치부해 모두를 불안과 죄의식으로 몰아넣는다면 여전히 깊은 구렁 어두움 속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일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지금 여기"는 하느.. ~ 사순 제 3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의 복음은 매우 짧지만 성경 곳곳에 숨겨진 보화들과 연결되어 아주 풍부한 의미들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유다인들의 염려와 경계심, 두려움을 잘 아십니다. 사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이지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8) 그들은 하느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율법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율법 준수 여부를 통해 가늠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수한 율법을 모아, 율법과 예언서의 근본 정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본질로 통합시키시는데, 세세한 사항마다에 집착하는 .. ~ 사순 제 3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살다보면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내가 베푼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 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 형제같은 사람에게서 받게 될 때 정말 용서가 안되지요. 벗님 여러분에게도 아직 용서할 준비가 안 된 상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힘들겠지만 그래도 용서가 하느님의 일이라 믿고, 스스로를 억지로 다그치고 밀어붙이기보다, 나와 그를 하느님 자비에 맡겨드린 채 삶이 흘러가는 대로 가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아픔과 미움이 옅어지고, 어느새 언제 그랬나 싶게 희미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겁니다. 베드로도 오늘 정말 견디기 힘들었나 봅니다. 형제들 중에 누가 자꾸만 깐죽거리고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을 갖고 논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참아주었겠지요. 그.. ~ 사순 제 3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미사의 독서들에는 '나아만'이라는 장수가 동시에 등장합니다. 이방인이고 나병환자였던 그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순종하여 치유를 받았습니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2열왕 5,11). 물론 그의 치유가 순조로웠던 건 아닙니다. 나아만 자신이 나름의 선입견과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영접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뭔가 눈에 보이는 주술적 치료 행위를 기대했을 겁니다. 그러니 엘리사의 비대면 말씀 전달 방식이 못내 서운했을 터이고, 게다가 그저 강물에 일곱 번 씻으라는 지극히 평범한 처방전도 못마땅했겠지요.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2열왕 5,14) 다행히 나아만은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지요. 감히 부하들이 나서서 예언자의 말을 따르.. ~ 성 요셉 대축일 / 오상선 신부님 ~ (로마 4,18)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앞이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고 온통 절망 뿐입니다. 이제 다 내려놓고 그냥 스러지는 것밖에 다른 길이 안 보입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희망이 절벽'인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가장 큰 위기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하느님의 손길을 가장 강력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바닥까지 내려 간 사람은 이제 더이상 내려 갈 곳이 없고 올라 갈 일만 남았으니 희망할 수 있습니다.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그 추락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두려울 뿐입니다. 바닥까지 내려가면 바닥을 차고 올라 올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동네친구들과 냇가에서 멱감으며 깊은 곳.. ~ 사순 제 2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창세 37,19)여러분은 꿈을 많이 꾸시나요? 어떤 사람은 매일같이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은 매일 5-6가지의 꿈을 꾼다네요. 다만 그것을 기억하고 하지 못하는 것 뿐이랍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어떤 꿈을 주로 꾸세요? 주로 개꿈이 많은가요? 아니면 거룩한 꿈을 많이 꾸시나요?어릴 적엔 참 꿈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꿈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만큼 현실적이 되어간다는 말이겠지요. 꿈은 현실보다는 이상과 관련있지요. 그래서 만약 내가 아직도 이루고픈 꿈이 많다면 나는 젊은 겁니다. 반대로 꿈이 없다면 나는 나이가 젊더라도 이미 늙은이이지요. 요셉은 꿈쟁이였습니다. 예수도 꿈쟁이였죠. 저의 사부 아씨시의 빈..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7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