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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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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 5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대화는 계속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대목에 등장하는 대상은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요한 8,31)입니다. 믿지 않는 바리사이들이나 최고의회 의원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들에게 제자가 되는 길을, 그것도 "참으로" 제자가 되는 길을 알려 주십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기만 하면 된다네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육화하신 말씀이시기에, 말씀에 머무르는 이는 그분에게 깊이깊이 젖어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말씀의 근본 정신과 뜻하시는 바와 말씀께서 나아가시는 방향을 감지하며..
~ 사순 제 5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사순 제5주일 복음에는 아주 급박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던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이 끌려온 겁니다. "스승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요한 8,4-5)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오고갑니다. "이 죄지은 여인을 모세 명령대로 죽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말하는 그 잘난 사랑으로 용서해 보낼까요? 후자라면 당신은 율법에 저촉이 됩니다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당신의 가르침 모두를 아우르는 답을 주시면서, 이 일을 꾸민 이들과 구경꾼들 모두를 자기 성찰의 기회로 이끄십니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아무 죄도 짓지..
~ 사순 제 4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예루살렘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나는 하느님을 안다."(요한 7,29)고 담대하게 선언하신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그 반향이 사뭇 컸나 봅니다. 많은 대중들은 "그래 저분이 바로 그 예언자야."(요한 7,40) 하기도 하고, "저분이 메시아야."(요한 7,41) 하며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표합니다. 식자층 중에서도 일부는 아마도 그렇게 생각은 했었나 봅니다. 니코데모 같은 사람을 보면요.(요한 7,50 이하) 그렇지만 일반 서민들과는 달리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최고 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 중 다수는 "갈릴래아에서는 결코 메시아가 나올 수 없다."(요한 7,41)는 논리로서 그렇게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문단속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으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신다."(요한 7,42)고 ..
~ 사순 제 4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드라마들을 보면, 항상 악역이 있고 선량한 주인공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악인의 술수나 모함 때문에 온갖 오해와 박해를 받거나 위기에 처하게 되지요. 시청자들은 한결같이 악인을 보며 저런 나쁜 놈(년)이 있나 흥분하며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불쌍한 주인공 편이 되며 함께 울고웃습니다. 대분분의 결말은 해피앤딩이지요. 그제서야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합니다. 이렇듯 사람들 마음 안에는 늘 의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악인을 선천적으로 싫어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이런 악인들이 꼭 있다는게 아이러니합니다. 의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악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벗님 여러분은 참으로 의인인가요? 여러분 주위에 진짜 못되먹은 악인이 있나요? 의인은 하..
~ 사순 제 4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벗님 여러분, 꼭지가 돌아버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사고를 치를 것만 같은 순간이 살아오면서 한두 번은 있었겠지요? 어떻게 참아 견딜 수 있었나요? 옆에 친구나 지인이 있어 나를 붙들고 막아주진 않았나요? 말리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열받으셨다네요. 이집트 땅에서 고생하던 유다인들을 그렇게 애써서 탈출하게 만들었고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려 애쓰고 있는데, 모세와 계약판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그 사이를 못참고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그걸 하느님이라고 숭배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차고 말이 나오지 않았지요. 도무지 이러한 백성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싹 다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뜯어 말립니다. 하느님, 당신이 구..
~ 사순 제 4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서른여덟 해나 앓아오던 이를 고쳐주신 날이 하필 안식일이라, 유다인들은 안식일 법을 무시한다는 혐의를 씌워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응수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그런데 이 말씀은 유다인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맙니다. "안식일도 지키지 않는 죄인인 주제에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 운운하다니!" 분명 안식일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 쉬신 일곱째 날을 기념합니다. 그러니 이를 수호하려는 유다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놓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일곱째 날을 쉬라 하신 건, 영육의 휴식이 필요한 모든 이들, 보호받지 못하는 종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
~ 사순 제 4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의 미사 독서들은 입당송부터 영성체송까지 온통 물 이야기로 채우고 있어, 그 안에서 맑고 밝은 생명력이 뿜어나오는 듯합니다. 갈릴래아 카나에서 돌아오신 예수님께서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병자들이 모여있는 벳자타 못으로 가십니다.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요한 5,3)고 합니다. 흡사 응급실이나 야전병원 같은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물론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고 피폐한 형편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거기에 모인 병자들은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는데, 물이 출렁거릴 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는 이는 무슨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
~ 사순 제 4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요한 4,46) 왕실 관리 한 사람이 갈릴래아 카나에 오신 예수님을 찾아와 앓고 있는 아들의 치유를 간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 않으면서 표징과 이적 따위나 요구하는 이들에게 많이 지치셨는지,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요한 4,48) 족속들이잖아."라고 동문서답을 던지십니다. 예수님과 왕실 관리, 두 사람의 관심사와 바람이 엇갈립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에 관심이 있으신데 반해, 그는 앓는 아이의 아버지로서 온 정신이 아들에게 쏠려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요한 4,19) 이 말씀에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아주 간결한 접속사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하느님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