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선(바오로) 신부님 (592) 썸네일형 리스트형 ~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으로 불리움 받았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미사의 모든 말씀들이 베드로 사도를 가리키면서 그를 언급하고 있지요. 그런데 저는 오늘 정작 베드로 사도보다 하느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방식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주인공은 베드로 사도보다 오히려 주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가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입당송). "돌아오거든" 미사 초입부터 우리는 앞으로 있을 베드로의 실책을 예감합니다. 돌아온다는 것은 떠남을 전제하는 표현이니까요. 슬프고 안타깝지만 예수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는 위기의 순간에 스승을 외면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이 모든 걸 예견하셨으면서도 그에게서 희망과.. ~ 연중 제 7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독서와 복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비'입니다. 1독서는 다윗이 원수같은 사울에게 베푸는 자비를 전해주고, 2독서는 우리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살리는 영도 주시어 당신의 모습을 닮게 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노래합니다. 복음 또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예수님의 요청을 전해줍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꽤 요구하시는 것이 많으십니다. 원수 사랑부터 시작해서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한 권고들을 마치 작정하신 듯, 숨 쉴 틈도 없이 줄줄 나열하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보처럼 살아라!'란 말입니다. 이 말씀들 앞에서 각자가 느끼는 무게는 조금씩 다를 듯 싶습니다. 더러는 아마 속으로 "주님, 그렇게 하는 게 참 좋긴 한.. ~ 연중 제 6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마르 9,5)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때론 천국체험도 하고, 때론 연옥체험도 하고, 때론 지옥체험도 합니다. 제가 수도원에 들어와서 첫 한두 해는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정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수련기부터 가끔씩 연옥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유기서원기가 되니 그 연옥이 더 자주 보이더니, 급기야 종신서원을 하고나서는 연옥만이 아니라 가끔씩 지옥체험도 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이 수도여정을 계속할 수 있음은 여전히 그 때의 천국체험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예수님은 애제자 셋에게 타볼산에서 천국체험을 하게 해주십니다. 그곳.. ~ 연중 제 6주간 금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어제 예수님의 수난 예고 내용에 이어 오늘 복음의 분위기는 자못 심각해집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예수님께서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자신과 십자가, 둘 중 하나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자아는 십자가를 거부하기 마련입니다. 더 편하고 강하고 즐거운 것을 좇기에 불편하고 약하고 고통스러운 것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합니다. 자아로 가득찬 이에게는 십자가의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아름다운 이상과 훌륭한 생각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행동과 직접 뒤따르는 발걸음이 반드시 이어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생각으로 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5). 급기야 목숨.. ~ 연중 제 6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는 눈먼 이가 눈을 뜹니다. 복음 내용의 배경이 되는 벳사이다는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회개하지 않는 고을 중 하나입니다(마태 11,20-24 참조). 그곳 사람들은 놀라운 기적을 목도하고도 예수님께 돌아서지 않았지요. 그들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이사 6,9-10 참조) 이들입니다.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마르 8,23). 예수님께서 눈먼 이의 손을 잡고 마을을 벗어나십니다. 벳사이다 안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들 고을 사람들에게는 값싼 소문거리로 술렁대다 사라질 스캔들 정도에 불과할 터입니다.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마르 8,23).. ~ 연중 제 6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말씀의 키워드는 '표징'(sign)입니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마르 8,11).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치유와 구마, 빵을 많게 하신 기적들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넘치게 보여주셨건만 그들에겐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마르 8,12). 예수님께서 많이 안타까워하십니다. 완고하게 닫힌 그들 마음은 과연 무엇으로 열릴까요?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다가 빛을 만난 이들과 함께 경축하고 기뻐하기에도 모자라건만, 자기들이 원하는 표징이 아닌 다음에야 결코 믿을 수 없다고 버티니 도무지 그들을 수긍하게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 8,12). 불신을 선택한 이들.. ~ 연중 제 6주일 / 오상선 신부님 ~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비결에 대해 논합니다. 예수님도 참행복을 선언하셨다고 루카와 마태오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의 행복선언은 산에서 이루어져 '산상설교'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루카복음의 행복선언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서"(루카 6,17) 말씀하셨다 해서 '평지설교'라 불리기도 합니다. "산"이 하느님 현존의 장소를 상징한다면, "평지"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 죄인들이 사는 현장, 기쁨과 눈물과 다툼과 애증이 엉킨 실질적 공간을 상징합니다. 비슷한 가르침 일화에 서로 다른 공간적 배경을 설정한 데는 두 복음사가의 목적과 의도가 나름대로 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행복하다고 하는 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현세에서 무겁고 힘겨운 .. ~ 연중 제 5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미사의 말씀들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예배를 만납니다.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마르 8,1). 이 이야기는 어제와 같이 이방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 곁에 모여든 군중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 대한 가르침을 얻으며 "사흘 동안이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광야에 머물렀지요. 사천 명가량이나 되는 무리가 모인 광야를 떠올려 봅니다. 인가도 시장도 없는 곳에서 사흘이나 머물렀으니 이제는 스스로를 지탱할 자원이 남아있을 리 없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마르 8,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 마음을 열어보이십니다. 마음에 흐르는 연민의 사랑에 제자들도 동참하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 이전 1 ··· 48 49 50 51 52 53 54 ··· 7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