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체 관련 내용

[스크랩] [넷째 주, 둘째 날] 불 속에서

넷째 주, 둘째 날

불 속에서


출애굽기 3,1-6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더니 야훼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떨기에서 불꽃이 이는데도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을 본 모세가 “저 떨기가 어째서 타지 않을까? 이 놀라운 광경을 가서 보아야겠다”하며 그것을 보러 오는 것을 야훼께서 보시고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하느님께서 부르셨다.

그가 대답하였다. “예, 말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선조들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



해설

모세는 광야에 나와 있다. 그의 여정은 그의 마음처럼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미디안 땅에 안정된 기반을 잡고 있었지만 그 곳에 마음을 붙이지는 못했다. 그가 마음 속에 느끼는 소외감은 그가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에 잘 나타난다. 게르솜(Gershom)이라는 아들의 이름은 “내가 낯선 고장에 몸붙여 사는 식객이 되었구나”라는 뜻이다.

모세가 겪은 소외감은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겪는 것과 흡사하다. 그의 갈등은 본래의 자아와 피상적인 자아와의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이면서 그 곳을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집트와는 전혀 다른 낯선 땅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본다. 그가 자기가 자라난 이집트의 궁전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인 히브리 백성과도 갈라져 있다. 히브리 인의 핏줄이었던 그를 이집트 여인이 강물에서 구해 주고 자기 아들처럼 길렀다.

그는 누구인가? 그의 고향은 어딘가?

다행히도 그는 양치는 목자로서 고독하게 지내야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이 문제가 계속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타면서도 태우지 않는 불꽃이었다. 모세는 그 불 가운데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자기가 거룩한 땅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산기슭에서, 활활 타는 양심의 떨기 앞에 서서 하느님의 현존에 마음의 문을 연다. “예, 말씀하십시오.”

모세가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순간, 하느님은 그를 힘껏 안아 주신다.

이러한 포옹을 통해 모세는 환영을 받으며 고향에 들어 서게 된다. 이 고향은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모세이다. 이러한 사랑을 만나자 모세는 그 사랑에 압도된다.

하느님의 현존을 발산하는 그분의 ‘얼굴’을 모세는 거의 감당할 수 없었다. 



기도안내 : 불타는 떨기 앞에서

매일기도 양식 : ‘매일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참조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긴장을 풀고 조용히 자신을 가라앉힌다.

하느님께 대한 나의 의존성을 분명히 한다.


구하는 은총

자유의 은총, 즉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사명을 맡기시든지 기꺼이 “예”하며 분명하게 응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구한다.


기도방법 : ‘여러가지 형태의 혼자 기도하는 방법’ 게시물 중에서 [관상] 참조.

나 자신을 모세로 상상한다. 모세가 느꼈던 고독감과 실향의 아픔을 나의 체험과 합치시킨다.

나의 정체와 내 인생의 목적에 대한 나의 질문들이 모세의 질문들과 같음을 깨닫게 된다.

모세와 함께 불타는 떨기를 만난다. 불을 응시한다. 활활 타는 불빛을 생생하게 연상하며 강렬한 열기를 느낀다. 떨기를 태우지 않으면서 가지들 사이로 치솟아 타오르는 불꽃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모세처럼 “주님, 말씀하십시오”하고 하느님께 응답하는 자유를 내 안에 갖고 있는가?

주님의 기도로 기도를 마친다.


기도 후 반성

이 기도 중에 알게 된 모든 느낌, 체험 또는 깨달음들을 영적일기에 적는다.

출처 : [넷째 주, 둘째 날] 불 속에서
글쓴이 : 가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