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르코 복음: 마르3,31-35 : 누가 내 어머니인가?
“...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입니까?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예수의 답변은 외견상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찬미 내지 찬양의 소리로는 결코 들리지 않는다. 예수는 새로운 형제관계 내지 친척 관계를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데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르코는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을 악평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그의 관심사가 다른데 있었을 뿐이다. 마르코에게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비로소 부활을 통해서만 계시되기 때문에, 부활 이전에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자들까지도 예수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3,21에 예수의 친척들이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 나갔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붙잡으러 갔다는 것을 전하는 점에서 그 의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3,35의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란 구절에서 마리아야말로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실행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최후의 유혹」이라는 소설에서 예수가 ‘결혼’과 ‘가정’, 그러한 평범한 행복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려내고 있지만. 결국 복음에서 보듯이 마지막 희생으로서의 죽음을 놓고, 자신의 뜻과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라는 쓴잔을 마시기를 수락한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마르 14,36; 마태 26,42). 바로 이 구절을 대하면서 우리는 예수의 철저한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 신앙이 그의 모친 마리아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루가 1,38; 대조 22,42). 루가 복음에 의하면 성자의 육화, 말씀의 강생은 바로 마리아의 ‘하느님 말씀에의 순종’에서 가능했음을 전한다.
이런 문맥에서 마르코 3장의 이야기는 피상적으로는 마리아에 대해 불경스러운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예수는 오히려 마리아의 이러한 방문을 이용하여,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는 사람이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점에 착안해서, “믿음으로 잉태하시며, 사람들 가운데 우리의 구원을 낳게 해 주실 여인으로 간택되시고, 그리스도가 그 안에 창조되기 전 그리스도께서 창조해 주신 동정 마리아께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분명히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셨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 그러니까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셨기 때문에 복되십니다. 마리아는 태중에 모신 육신보다 마음에 지닌 진리를 더 열심히 간직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며 육신이십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마음속에서 진리이시며,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신이십니다. 그러나 태중에 있는 것보다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축일 제 2독서의 독서기도; 강론 25,7,8; PL 46,937-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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