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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 관상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것 아니다. "


관상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
막상 기도에 대한 말을 시작하려다 보니 또 한 가지 말해두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집( 성요셉 수도원)에 없어서는 안 될 겸손이 그것입니다. 겸손이야말로 기도에서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것으로서, 이미 말한바와 같이 어떻게 하면 이 덕을 잘 닦을 수 있는지를 알아두는 것이 긴요할 뿐더러,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겸손한 사람같으면, 관상에 도달하는 이들만큼이나 자기가 거룩하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주님은 대자대비하시니 그렇게 못 해주실 바도 아니지만, 날더러 말하라면 주께서 우리에게 타이르시고(루가 14.8참조) 몸소 행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치신 대로 항상 끝자리를 골라서 앉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만일 주께서 여러분을 이 길(관상)로 인도하려 하신다면, 스스로 준비나 잘 하여둘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특히 요구되는 것이 겸손입니다. 따라서 지옥에서 악마의 종살이를 했어야 마땅할 여러분을 주님이 건져내시어 당신 여종들을 섬기게 해주신 것을 복으로 알고 오직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2.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스스로 가장 낮다고 믿는 사람이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높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집에 있는 사람 전부가 기도에 힘쓰며 산다고 해서 전부 관상가가 되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될래야 될수 없는 일일 뿐 아니라, 이 사실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처참할 것입니다. 관상은 주님이 내리시는 것이지만 구령에 필요한 것도 아니요, 천당복의 조건으로 요구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그러니 내가 말해온 바를 잘 지키는 사람이면 완덕에 뛰어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아마 공로도 훨씬 더 많을 것이니 그만치 노력이 큰 까닭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마치 굳센 사람처럼 다루시어 이승에서 누리지 못한 모든 낙을 한꺼번에 주시려고 간직해두시는 것이니, 용기를 잃거나 기도를 않는다거나 남들이 다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께서는 더디 오시는 때도 있고, 다른 사람같으면 몇 해를 두고 내리시던 은혜를 한꺼번에 아주 흐뭇하게 주시기도 합니다.

3.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십사 년 이상이나 책을 읽으면서 하는 묵상이 아니면 도무지 묵상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은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읽으면서 하는 묵상마저 되지 않아서 그저 외우는 기도밖에 못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어찌나 생각이 나풀거리는지 늘 갈팡질팡하며 한 군데 있지를 못하고, 심지어는 주님께 생각을 모으려 하면 별의별 망상, 세심, 그리고 신앙에 대한 의심까지 일어나는 수가 있습니다.

내가 잘 아는 나이 많은 수녀 한 분은 생활이 모범적이고 극기를 잘하고 하느님의 거룩한 종인데도 몇 해를 두고 외우는 기도로 시간을 보내었지 묵상은 해볼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껏해야 외우는 기도문을 조금씩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들도 많습니다마는, 사실 겸손만 하면 결국 구원되기는 마찬가지요, 흐뭇한 맛을 느끼기는 이들과 똑 같습니다. 한편, 안전도는 더할 성싶은 것이, 맛이란 하느님의 맛인지, 악마가 집어넣는 것인지 대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그것이 하느님의 맛이 아니라면 위험도는 더 높습니다. 악마가 이승에서 노리는 것은 교만을 퍼뜨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맛이라면 무서워할 것이 못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책에서(자서전 17, 19, 28장 참조) 내가 길게 서술한 바와 같이 그것은 겸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4.
맛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탓이나 아닌가 하여 겸손하고 항상 조심성 있게 나아갑니다. 다른 사람이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것을 보고 자기는 통 그렇지를 않으니 주님 섬기는 일에 훨씬 뒤떨어지지나 않나 걱정하지만 실상은 훨씬 앞서가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눈물이 좋기는 하여도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겸손과 극기와 이탈, 그리고 다른 덕들이야말로 항상 틀림이 없습니다. 겁낼 것은 조금도 없으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여러분도 훌륭한 관상가들처럼 완덕에 나아가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5.
성녀 마르타는 흔히 하는 말로 관상가는 아니었어도, 성녀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 그리스도를 그토록 자주 집에다 모시고 잡수실 것을 해드리고, 시중을 들고, 한상에서 같이 먹고 하던 그런 성녀가 되었으면 무던하지 이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모두가 막달레나같이 관상에 잠겨 있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잡수실 것을 누가 드리겠습니까? 부디 이 수도원을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알고 저마다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활동생활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관상에 깊이 잠겨 있는 이들을 보고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말 없이 가만히 있어도 주께서 대신 편들어 주실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런 이들이 자신을 잊고 일체를 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6.
오히려 주님께 잡수실 것을 장만해드릴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마르타와 함께 시중드는 일을 복으로 아십시오. 참다운 겸손이란,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혼연스럽게 하면 서도 당신의 종이라 불리우기조차 부당하다는 것을 느끼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관상이건, 목상기도건, 구송기도건, 집안일을 보건, 가장 궂은 일을 하건, 모두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잡수시며 쉬시러 오시는 큰 손님을 섬기는 일이라면, 어느 것이 더 낫고 더 못하고 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7.
내 말은 관상이 우리 노력에 달리지는 않았을망정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 선택이 아닌 주님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수 년 동안 해온 그 일을 그대로 해나가라는 것이 주님의 뜻인데도 여러분 마음대로 그것을 바꾸려든다면 우스꽝스런 겸손일 터이니, 아예 이 집을 주님께 맡겨버리십시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어른이시라 여러분과 당신께 좋도록 알아서 처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할 일을 다하고 위에서 말한 완덕을 닦으면서 관상을 위한 준비를 갖추십시오. 여러분의 이탈과 겸손이 순수하다면, 분명 주님께서는 관상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안주신다면 천국에서 한꺼번에 주시려고 이 은혜를 보류하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말한대로, 여러분를 굳센 사람처럼 다루시어 주님이 항상 지시던 십자가를 여러분도 이 세상에서 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몸소 하신 일을 여러분도 하라는 것보다 더한 사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관상에서도 이렇듯 큰 은혜를 얻어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판단은 주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가 참견할 바가 아닙니다마는, 어쨋든 관상이 우리 선택에 매이지 않는 것은 큰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관상이 무사태평한 것으로 알고 너도 나도 위대한 관상가가 되려 할 것입니다.

우리 짐작에 얻을 성싶은 것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얻음입니까? 우선 잃어버릴 염려가 없어서 좋습니다. 주님은 결코 자기를 끊어버린 사람한테는 잃게 하지 않으시고, 다만 더 큰 이익을 위해서만 손해를 허락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