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무엇이 ‘공허한’ 것인지 나도 도대체 알지 못합니다. 나는 생각이나 감정적 표현이 없는 관상적 사랑의 어둠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대도 알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공허한’것은 무엇하나 아는 바가 없습니다. 내가 볼 때는 만물에 하느님의 위엄이 가득차 있습니다. 내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는,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텅빈 장소, 즉 공허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온 창조계를 두루 채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악마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변할 줄 모르는 일종의 ‘악마 신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듯한 사람들을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느님보다는 악마에게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전신주 뒤에서, 침대 밑에서 악마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줄곧 악마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악마는 그들의 삶에서 대단한 구실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나는 오히려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에서 - 그러니까 전신주 뒤와 침대 밑은 물론 다른 모든 곳에서도 - 하느님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악마를 걱정하는 자들에게는 악마를 걱정하도록 놓아둡시다. 무슨 ‘공허’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것을 두려워하도록 놓아둡시다. 사랑하는 벗이여, 나는 그대를 위해서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을 받아 꾸준히 사랑의 탐색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어떠한 악도 무서울 것 없을”(시편 23편) 것입니다.
(사랑의 탐색/윌리엄 A. 메닝거 지음/성찬성 옮김/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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