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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 활동 생활하는 이보다 관상 생활을 하는 이의 고초가 더 크다. "


활동생활을 하는 이보다 관상생활을 하는 이의 고초가 더 크다


 


1.
주께서 관상의 길로 부르시지 않은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하렵니다. 내가 직접 보고 깨친바로는, 이 길로 가는 이들은 적지 않은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십자가를 어떻게 주시며 어떠한 길을 걷게 하시는지 여러분이 안다면 소스라치게 놀라실 것입니다.

나는 활동과 관상, 이 두 가지 길을 다 알고 있는데, 주께서 관상자들에게 내리시는 고초가 얼마나 견디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그것은 맛스러운 먹이를 주심이 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인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귀여워하시는 이들을 고생길로 이끄시고, 많이 아끼실수록 많은 고생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관상자들을 가려주시고 벗으로 여기시면서 그들을 미워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고생도 안하고 호강이나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주님의 친한 벗으로 맞아주시겠거니 하는 생각이야말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느님이 관상자에게 육중한 십자가를 지우신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깍아자른 듯이 아슬아슬한 길로 그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때때로 그들은 죽는가 싶고, 되돌아가 출발점부터 다시 걸어보자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경우, 주님은 복돋우시느라고 물 아닌 포도주를 마시게 하시어 그들이 듬뿍 취하면,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배겨내도록 하십니다. 진정한 관상자치고 활기차고 참을 결의가 없는 이를 내가 거의 보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들이 섬약하면 우선 주께서 하시는 일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시는 일인 것입니다.

3.
활동생활을 하는 이들은 관상자들이 맛보는 기쁨을 약간이나마 눈치채고는 항상 그런 줄로 여길지 모르지만, 여러분 같으면 아마 하루도 그들의 고생을 참아내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됨됨이을 낱낱이 아셔서 각자의 영혼에게 가장 알맞고 가장 이로울 것을 살피시어서 저마다의 일을 마련하셨습니다. 따라서 할 일만 다하였으면 일한 것이 헛수고가 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똑똑히 들어 두십시오. 우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여기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딴 일로 이 집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한 해, 두 해, 십 년의 일이 아니므로 겁쟁이라서 그만두었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되며, 우리 할 일을 다했다는 것을 주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군인을 본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오랫 동안 군에 복무하였더라도 상관이 무슨 직책을 명령할지 몰라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산관한테서 월급을 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임금님은 지상의 상관들보다도 얼마나 더 훌륭한 보상을 해주십니까?

4.
상관은 앞에 있는 병졸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그 하나 하나를 잘 알고 있는 터이므로 그 힘에 따라 임무를 나누어주겠지만, 그 자리에 없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갚아줄 것이 없고 무얼하라고 명령할 수도 없습니다. 자매들이여, 이와같이 묵상에 힘쓰십시오. 묵상을 못 하겠거든 구송기도나 독서나 주님과의 대화를 하십시오.

모두가 지키는 기도시간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그 시간을 모르니 어리석은 처녀(마태 25.1-3)들 같이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크나큰 고통을 맛스러운 기쁨으로 꾸며서 내리실지 누가 압니까? 만일 내리시지 않는다면, 관상은 여러분에게 맞지 않고 다만 묵상만이 맞는 줄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마저 하기가 과남하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여기에 비로소 여러분의 겸손과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5.
아까 말한 대로 어떠한 명령을 받든지 혼연스럽게 복종하면서 사십시오. 활동생활을 하는 여종이 정말 겸손하기만 하면, 그는 행복하고 자기 자신을 꾸짖기만 할 것입니다. 전투가 있을 때에 큰 싸움은 딴 자매들이 하게 내버려두고, 군기들 든 병사는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위험한 고비를 무릅쓰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속으로 애타기는 다른 군사들보다 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를 들고 가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고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 해도 기를 손에서 놓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관상자들도 겸손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기는 공격을 다 받으면서 남을 절대로 공격을 하늘 일 없이 오직 참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참으며 십자가를 높이 받드는 것이 그의 본문이므로 닥쳐오는 위험을 눈앞에 보면서도 행여 자기의 참을성이 약하다는 것을 남에게 드러나 보일세라 깃발을 떨구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그의 직책이 영예롭다는 것입니다.

관상자는 자기의 할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깃대를 놓기만 하면 싸움은 지는 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덕에 나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을 마치 대장이나 주님의 벗으로 아느니만큼, 이들이 자기 직책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면 금방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6.
자매들이여, 우리는 무엇을 빌어야 할지 알지 못하니(마태 20.22참조)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립시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그분은 더 잘 우리를 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무슨 권리나 있는 듯이 주님께 은혜를 강요하는데, 이것은 별난 겸손일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다 알고 계시므로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내리시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신의 잔(마태 20.22참조)을 마실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7.
사랑하는 따님들이여, 여러분이 덕에 나아갔는지 알고 싶거든 한 가지 아는 법이 있습니다. 누구나가 자기를 그 중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 생각이 행동으로 드러나서 남에게도 선과 이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기도 중에 느끼는 맛이나 주님이 내리시는 탈혼, 묵시나 그 밖의 다른 은혜 같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이런 은혜들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면 저 세상에 가서나 될 일입니다.

이것은 쓰이는 돈, 다함없는 항산恒産 그리고 무기 연금과 같은 것이지 있다가 없어지는 예금이 아닙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것은 겸손과 극기와 순명의 덕으로서 어른이 명령하는 것은 한 치도 어김없이 채우는 것입니다. 어른은 바로 하느님을 대신하므로 그의 명령이 곧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순명으로, 이것이 없는 자는 나는 수녀도 아니라고 간주하고 더 말할 나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수녀다운 수녀들, 적어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알고 있으나 너무나 중요한 일이므로 한마디만 더 하겠으니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8.
어떤 사람이 순명의 서원을 하고도 잘 지키지 않는다 합시다. 이 서원을 가장 완전히 지키는 데 주의를 다하지 않는다고 합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무엇하러 수도원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확언할 수 있습니다. 순명이 없는 한, 관상생활은 물론 활동생활마저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 이것만은 아주 확실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리고 순명의 서원과 그 의무가 없는 경우에 적어도 관상에 나아갈 마음이 있고 힘쓰는 사람이라면, 자격있는 고해신부에게 자기의 의지를 온전히 내맡겨야 안전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단 일 년 만에 거두는 성과가 보통때의 몇 해 만에 얻는 성과보다 크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므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사랑하는 따님들이여, 내가 바라는 것은 위에서 말한 이 덕들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이 덕을 지니려고 힘쓰고, 이 덕에 대하여 거룩한 시새움을 가지십시오. 예외적인 은혜들일랑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애써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인 것입니다. 남들이 그러한 은혜를 하느님께 받았다 하더라고 악마의 장난으로 허락하실 수도 있으니, 많은 사람이 거기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속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안전한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알쏭달쏭한 것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려 합니까? 여러분을 이런 위험으로 끌어 넣는 게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10.
하느님은 관상의 은혜를 주시고 싶은 사람을 굳세게 만들어주시지마는, 워낙 우리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도움이 될까하여 이 문제를 길게 다루어보았습니다. 관상자가 아닌 이들을 깨우쳐준다는 노릇이 마음으로는 기뻣으나, 관상자 자신들도 여기에서 겸손을 배우리라 믿습니다. 주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로 하여금 매사에 당신의 뜻을 따르도록 빛을 주시리니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