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가 많아서 죽은 사람
-이찬홍신부-
복음에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현대의 위기 중 가장 심각한 위기가 가정의 파괴라 하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해 봅니다.
복음 말씀대로 정말 부모님과 아내와 자녀, 형제자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라는 말씀일까요?
단연코 아닙니다.
십계명중, 이웃사랑의 첫째인 4계명에서 알려주듯이,
예수님께서는 부모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네 형제에게 미친 놈 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가정의 모범을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성가정을 본받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스승을 배신했지만, 배신한 그 죄보다도 스승을 배신했다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
죄책감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그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유다에게
“그는 태어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형제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은 미워하라고...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의미를 여러분들과 함께 찾아 나설 뿐입니다.
좋은 가르침을 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두 시간 넘게 ‘검색’창을 휘집고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나름대로 ‘재주가 많아서 죽은 사람’ 이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남 보다 많은 재주가 있어 그 재주를 뽐내며 다녔습니다.
다른 사람은 유일한 재주가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납니다.
재주가 없는 사람은 ‘이크 곰이다. 빨리 나무위로 올라가야지...’ 라며
나무위로 올라가 곰을 피합니다.
그러나, 재주가 많은 사람은 ‘아.. 내가 곰을 피하기 위한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저 곰을 피할까?
죽은 적을 할까? 나무 위로 올라갈까? 벽을 탈까?...’ 등
자신의 재주를 생각하다가, 결국 곰을 피하지 못하고 곰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단순한 예화지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꺼리를 남겨 줍니다.
곰에게 생명을 건진 사람은 할줄 아는 것이 많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이라고는 나무에 올라가는 것뿐인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위험이 닥쳐오자 자신이 할 줄 아는 단 하나의 방법으로 위험을 모면합니다.
그러나, 가진 재능이 많은 사람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까? 어떤 방법을 쓸까?’
생각만 하다가 곰에게 생명을 잃게 됩니다.
어쩌면 생각해야할 문제가 좀 좁혀진 것 같습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미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곧 부모와 아내, 자녀, 형제자매, 자기 자신, 이모든 것이
자신에게 있는 여러 재능,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위험이 닥칠 때마다
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실제 그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교만함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능력으로 살아간다는 사람들은
참되게 예수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겸손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집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리로다.’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주님께 매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라는 고백 속에서 참되게 주님을 따를 수 있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삶을 소극적이고 피동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냥 대충 하지 뭐.’ 식의 표현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있는 교만함과 거만한, 다른 것으로 기울어지는 욕망을 제거하고 정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문제, 잘못에 있어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많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 이를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자기의 욕망과 욕심대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주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기 보다는,
자꾸 주위를 둘러보고 뒤를 돌아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욕망, 거만함 등을 버리라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만을 사용하도록 합시다.
많은 재능이 있다는 거만함에 스스로 뒤쳐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라.’는 이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많은 위험들을 피하며 구원에 길로 나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이런 노력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아멘.
서울대교구 이찬홍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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