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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 밀알의 사랑 / 기경호(프란치스코) 신부님 ~

    
사순 5주일 요한 12,20-33(15.3.22)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Grain of wheat dies to bear much fruit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 밀알의 사랑  
 

생명을 싹틔우는 봄이 어느 샌가 소리 없이 걸어 들어와

포근한 자리를 깔고 모두를 감싸는 때이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어떤 처지에 있든 따스하고 부드럽게 다가오는 봄기운 자체가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우리도 얼마 남지 않은 사순절에 따스한 마음으로 만사만인을

 받아들이고 견디며 십자가의 신비 깊숙이 들어가도록 하여야겠다.

 

오늘 성서 말씀들을 통하여 온전히 십자가의 사랑에 일치되어야 하는

 우리의 영성생활에 대하여 묵상해보도록 하자.

오늘의 제1독서에서 고난 받는 예언자 예레미야는 바빌론 유배라는

 쓰라림을 겪은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써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을 맞았다.

이어 기원전 605년 바빌로니아의 왕권을 잡은

느부갓네살 왕은 주변 국가들을 자주 침략하였다.

 

 이에 유다 왕국도 몸살을 앓는다.

유다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대다수 정치가들은 이집트와 동맹을 맺어 바빌로니아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의 속국이 되더라도 주님께 대한

신앙을 지켜나가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유다 정치가들은 예레미야의 생각을 따르지 않았고

결국 기원전 587년 바빌론 유배라는 치욕을 맛보게 되었다.

예레미야는 유배를 체험한 유다 백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31,31-34).

 

곧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이 주님과의 계약을 깨뜨렸으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가슴에 당신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시어 당신 백성으로 삼아주실 것이며,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려준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한없이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다.

 이 사랑의 용서는 온갖 어려움 중에도 주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며

주님 안에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라는 ‘사랑의 채찍’이기도 하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유일하고 합당한 응답은 사랑의 존재가 되어

자신을 기꺼이 내어드리고 고통과 시련과 불편함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고 말씀하신다.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삶의 존재이유와

근본적인 소명을 밝히신 말씀이다.

 

아울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남김없이 봉헌하신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요약하여 가르쳐주시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거룩함에 초대받은 신앙생활이란 거룩해지는 삶인데

그것은 시간과 재능과 재물 등 모든 것을 남김없이 언제나

 하느님을 위하여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삶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듯이’

(히브 5,8)

 

 ‘겪어냄’과 ‘내어놓음’,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희생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시간이나 재물 일부를 떼어 다른 이를 위해

 내놓는 것을 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남김없이’ ‘언제나’ ‘기꺼이’

내놓는 것을 말한다.

 

전적인 봉헌, 곧 내가 죽어서 남을 살리는 ‘통째로의 투신’을 뜻한다.

나의 이기심 버리고, 내 고집 꺾으며, 내 뜻 내려놓고

 좋음과 애정을 마음에 품고 바라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 행복해지고,

내가 고통을 견뎌내고 힘든 일을 감당하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이 평범한 사랑의 진리를 살아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나약함과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따스한 사랑과,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의 ‘영원한 견딤과 수용’을

다시 바라보며 용기를 내자.

 

 자신을 땅에 떨어뜨리는 겸손, 묻히는 의탁,

썩는 자기비움과 자아이탈을 통해 생명의 열매를 맺는

밀알의 삶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주님의 숲 - 사랑의 날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