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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사순 제 5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님 ~

  
  
사순 5주 월 요한 8,1-11(15.3.23)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A Woman Caught in Adultery
 
                        
 다시 시작하도록 일으켜 세우는 사랑  
 

 

하루도 죄짓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것이 인생인듯싶다.

 

이 끝없는 육의 경향과 세상의 유혹과 도전 앞에

자주 넘어지는 것이 인간다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죄에 걸려넘어지지 말아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죄를 지었을 때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따라

 간음한 여인을 정당하게 판단하였다.

 

유대 율법상 간음죄는 우상숭배, 살인과 함께 3대 범죄 중의 하나로써

 죄를 범했을 때는 즉시 “두 사람을 다 그 성읍의 성문으로 끌어내어,

그들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신명 22,24)

 

또 “어떤 남자가 자기 이웃의 아내와 간통하면,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레위 20,10)

 

그런데 그들은 죄인을 다룰 방법에 대해 물으면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

 

먼저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그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형에 해당된다고 하면,

 ‘죄인들의 벗’으로서 사랑을 실천해온 그분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또한 사형선고를 해야 한다고 하면 일반인은 물론 유다 최고회의조차도 사형선고나

집행의 권한이 없으니 로마법을 어기게 되어 로마에 반기를 들게 되는 셈이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용서해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깨뜨리고, 간음죄를 조장하는 자로 고발당할 수도 있었다.

 

유다 지도자들에게는 사실 궁지에 몰린 간음한 여인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히려 그 여인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속셈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게 그들의 간교함을 물리치셨다.

그분은 아무 말 없이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땅위에 쓰셨다.

 

예수님께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위선과 간교함,

남을 생각할 줄 모르는 냉정함 앞에 침묵으로 저항하시며 고발하고 계시는 듯하다.

 

 어쩌면 이 침묵은 유다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잔인성을 알아차리고

율법 너머의 하느님의 자비를 회상할 시간을 주신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어둠을 살피기보다는 줄곧 물어대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대신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하신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7)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간음한 여인에게 관심이 없고,

당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것을 간파하셨기 때문이다.

 

한 순간 침묵이 흘렀고 얼마 후 나이 많은 자들부터 하나씩 그 자리를 모두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8,9)

 

 이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노는 “거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

깊은 동정심이 남았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의 힘으로 인간의 죄악과 간사함과 냉정함이 사라진

 하느님 자비의 한복판에 서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8,10) 하고 질문한다.

 그러자 그 여인은 “아무도 없습니다”(8,11)라고 대답한다.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 하고 말씀하셨다.

 

자비는 용서를 선물하고, 용서받은 이의 응답은 다시 죄짓지 않음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다른데 관심’을 두고 경쟁심이나 시기심을 품고 때로는 간교하게 처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 구원에의 갈망을 지니고

순수한 지향으로 우리 가운데 주님의 자비가 들어나도록 해야 한다.

 

 모두가 죄 중에 살아가기에 누구든 남의 죄를 판단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서로 너그럽게 대하도록 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고

말씀하신다.

 

이제 남의 잘못, 실수, 허물을 밝히고 입에 담지도 말고,

들어도 사랑으로 흘려보내며, 기억의 한편에 남겨두지도 말자.

 

 그리고 자주 죄에 떨어짐에도 주님께서는 끝까지 다시 회복하고

 다시 시작하도록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기다려주심을 기억하자.

 

 자주 넘어짐에도 사랑의 침묵으로 문제 삼지 않고 용서해주심은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채찍임을 알아차렸으면 한다.

 

 누가 누구를 판단하며 단죄할 수 있을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나를 사랑하는 그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