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0일 수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로마 8,35. 37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응송
◎ 내 언제나 * 주님을 찬미하리이다.
○ 내 입에 그 찬미가 항상 있으리이다.
<청원기도>
주여, 오늘 하루를 은총으로 비추시어,
―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게 하소서.
◎ 주여, 우리와 함께 머무르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마르 3,3-6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영적 독서>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 에디트 슈타인, 이연행 옮김
하느님의 은총에 자리를 내어 드리려면 하루를 어떻게 계획해야 하나?
1. 깊은 영성, 고요, 자만심이 없는 것, 온정, 명석함. 어떻게 우리는 이 모든 자질들을 전부 모을 수 있는 덕을 갖는 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이 자질들이 그 안에서 저마다 다른 양상이 되는, 유일하고도 총체적인 영혼의 상태에 의해서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우리는 의지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은총에 의해서 우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은, 은총을 향해 우리 자신을 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고 다만 우리가 하느님의 뜻으로 가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 전체가 은총을 받아 하느님의 손안에서 만들어질 준비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움과 침묵의 상태는 우선적으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진: 이태리 스페코디나르니(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Speco di Narni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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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수요 강좌>
교회사 강좌
세계교회사
고대그리스도교
제1기 1-311년
제6절 알렉산드리아 그리스도교 학교의 기원
특히 로마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처럼 당시의 세계적인 도시의 큰 교회들에서는 매일같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려는 이들의 쇄도 때문에 세례지원자들을 위한 특별한 세례지원기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예비교육의 기간과 강도는 세례지원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더욱더 요구되었다. 이들 교리교사들을 위해서도 양성소, 이른바 교리교사 학교를 만들어야 하였는데 그곳에서는 수준높은 신학적 훈련과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이 제공되었다. 이러한 학교가 2세기에 이미 알렉산드리아에 존재하였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려는 학교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스도교적 지혜교사들의 자유로운 교수활동에서 생져난 것인데 그들은 스토아학파 견유학파 그밖의 철학가들의 교수방법을 따라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완전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강의하였다. 유스티노는 미신자인 판사로부터 그의 활동에 관히여 질문을 받았는데 관변측 기록에 의하면 그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나는 티모테우스 목욕탕 근처의 마르티누스라는 사람의 집 2층에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로마에서 두 번째로 살게된 이후 거기에 계속 체류하였습니다. 그밖의 집합장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에 의거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시칠리아 사람인 판테노는 180년경 헬레니즘의 정신적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 개인적인 주도로 그리스도교 지혜학교를 세우고 철학 강의의 일환으로 복음을 강의했을 때도 그렇게 행동하였다, 그는 지식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이교인 중에서 진리를 탐구하려는 사람들도 받아들였다. 그는 철저하고도 동시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강의로 적지 않은 이교인을 그리스도교로 입교시켰고 또 많은 그리스도인을 높은 신학적 사변으로 감동시켰다. 아테네의 글레멘스(140/150∼216 이전)도 이렇게 그리스도교로 인도되었고 곧 그에게 감동되어(200년경 판테노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철학자로서 지혜의 교사로서 점차 성공을 거두며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하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제자는 젊은 오리게네스(185년경 알렉산드리에서 출생 254년경 사망)였다. 글레멘스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때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자 오리제네스는 그의 교수활동을 계승하였다. 오리게네스도 자유의사에서 또한 무급교사로 그리스도교적인 교수활동을 시작하였다. 21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데메트리오스 주교는 알렉산드라아 교회의 세례지원자들의 교리교육을 비로소 공식적으로그에게 맡겼다. 그러나 그는 본연의 교리교사직을 곧 그의 친구인 헤라클라스에게 인계하고 자신은 전에 하였던 일에 다시 전념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교의 위임에서 또는 교회에서 공적으로 임명된 교사로서는 아니었다. 그의 주교의 허가나 관면을 받지 않고 230년경에 친구 주교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되었을 때 그는 데메트리오스 주교와 절교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라이를 떠나야 하였고 팔레스티나의 가이사리아로 가서 그곳에서 교수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데치우스 황제의 박해 때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다가 석방되기는 하였으나 고문의 여독 때문에 곧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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