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ominic Ko 신부님

~ 2016년 1월 29일 금요일 묵상과 기도 / 고 도미니코 신부님 ~

2016년 1월 29일 금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2고린 12,9b-10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응송
◎ 이른 아침부터 * 당신의 은총을 어서 입게 하옵소서.
○ 어디로 가야 할 길 내게 알려 주시고,


<청원기도>
약한 이와 불쌍한 이를 당신 십자가의 동반자로 택하셨으니,
― 그들에게 힘과 인내를 주소서.
◎ 주여, 당신의 피로 구속하신 우리를 구원하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마르 4,30-34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영적 독서> 내적 침묵으로 향하는 길, 에디트 슈타인, 이연행 옮김

3. 사랑하는 님, 여기 계시며, 오시네

하느님은 진리이십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그에게 그 진리가 명백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느님을 찾습니다.
사람들을 명상으로 이끌고 또 하느님께 인도하는 길로 이끄는 모든 충동은 은총의 효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 표시나 자연스런 역량들이 사용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에로 불리우는 것, 그것이 바로 성소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내적 성찰이나 실현 가능한 여러가지 길을 살펴보는 것으로는 성소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해결책은 기도에서 찾아져야 합니다.
영혼은, 주님이 그 영혼 자체를 위하여 그것을 찾으시는 왕국에서만 그 자신을 찾을 수 있고 또 평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넘치도록 풍성하게 주어지는 이 충만함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이 왕국을 원할 때에, 우리는 이를 은총의 왕국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대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고 감각적으로 도달할 수도 없는 그대상은 그래도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현존하며 우리에게 와닿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멈추게 하고, 우리가 그분께로 마음을 정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538)

사진: 이태리 스페코디나르니(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Speco di Narni San Francesco
-------------------------------------------------------------------
<1분 금요 강좌>
신학 강좌
제3절 종교개혁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시기
3. 자유주의 신학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은 19세기 말 신학사의 전환점에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신학자는 Adolf von Harnack(+ 1930) 이다 그가 베룰린에서 연속적으로 행한 유명한 강연들을 모아 “그리스도교의 본질”(1900) 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것은 이 신학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교의역사 교과서”도 중요하다(1886-1890). 미국 신학자 Paul Tillich(+ 1965)도 영향력을 미쳤다. 자유주의 신학의 관심사는 그리스도교 신앙(내지 신학) 그리고 세속적 지식을 서로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대중적인 형태로는 이러한 입장올 문화프로태스탄티슴이라 부룬다. 문화프로테스탄티슴은 결정적으로 프로테스탄티슴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괴테와 쉴러의 독일 고전, 칸트의 독일 계몽의 철학 그리고 혜겔의 독일 관념론의 철학 독일 ‘학문’의 영향을 받은) 19세기 말의 독일의 문화형식은 그리스도교의 최상의 형식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독일 본질에 비추어 세계를 보아야 한다). 역사는 하느님이 이끄시는 과정을 따라 지속적으로 완성되어 간다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종교(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교, 특히 프로테스탄적-프로이센적 형태와 문화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동시대인들의 지식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신앙명제들(예를들어, 원죄교리는 아우구스티노가 신약성서를 오해해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을 포기하거나 혹은 중개하기 어려워 보이는 신앙명제들은 예수의 신성에 관한 교리는 인류가 전체적으로 본받고자 노력해야 하는 예수의 모범적인 특성들에 관한 진술로 해석된다.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신앙과 이성의 중개를 도모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오로지 성서 혹은 예수 그리스도에만 기초를 두기가 어려우므로 일반 인간적 체험위에 신앙의 기초를 두고자 노력하였다.

신앙과 시대적 사고와의 화해 내지 대화를 하고자 하였던 자유주의 신학에 상응하는 무엇을 로마 가톨릭 사상안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근대주의(Modemismus)이다. 다만 이 명칭은 외부에서 이를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주어진 것으로서 계몽주의 철학 그리고 철저한 성서 비평의 문제들에 대해(로마-가톨릭적) 대답을 주고자 시도했던 다양한 노력들을 지칭한다. 많은 저자들이 Maurice Blondel( + 1949) 혹은 Henri Bergson(+ 1941)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유명한 인물로는 “L’evangile et l’glise”(1902 복음과 교회)의 저자 Alfred Loisy(+ 1940) 그리고“Christianity at the Cross-roads”(+ 1909 갈림길에 선 그리스도교)의 저자 George Tyrell ( + 1909) 등을 들 수 있다.(-59)



Dominic Ko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