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0일 수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성경소구 로마 6,8-11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죄의 권세를 꺾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어서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와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응송
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
<청원기도>
죽음을 이기심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들어 높이시어 은총으로 가득히 채워주신 구세주 그리스도여,
― 우리 마음에 용기를 주시고 성령의 은총으로 이날을 거룩하게 하소서.
◎ 주여, 당신의 승리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루카 24,30-32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영적 독서> 성경말씀을 통해 부정적 감정극복하기/두려움, 조이스마이어지음, ’문종원 옮김
4. 하늘나라의 열쇠
간구하는 기도는 효과가 있다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간절히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기도하자 하늘은 비를 내렸고 땅에서는 곡식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야고 5,16-18).
어떤 조직에서 힘과 권위가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열쇠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열쇠가 하는 일은 잠그고 여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매고 푸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위해서 중재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삶에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을 속박하는 지옥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축복을 ‘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으며 이런 기도의 열쇠로 하느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도 받은 것이다.
얼마나 귀한 특권인가? 그래서 당연히 사탄은 우리를 속여서 기도 생활이 효과가 없다고 믿게 하려는 것-어둠의 세력에 대적하기 위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의 열쇠를 사용하기보다는 포기하고 중단하게 하려는것이다.
기도 생활을 소홀히 하도록 충동질히는 사탄과 대적하라. 자신의 힘으로 거룩하게 살 수 있다거나 유창한 말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간절하고 진실한 기도가 열매 맺을 것이라고 믿고 다양한 기도로 주님을 부르면서 하느님을 인식하도록 하라.(687)
사진: 이태리 뽀지오부스토네(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Poggiobustone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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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수요 강좌>
교회사 강좌
세계 교회사
고대 그리스도교
제1기 1-131년
제8절: 로마제국에서의 그리스도교의 박해
한편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를 질서유지의 권력으로 인정하고 국법을 지나칠 정도로 엄격히 준수하고 황제를 “위하여” - 황제에게가 아니고- 기도를 바쳤다. 그러므로 보통 때는 그들에게 간섭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박해는 단지 산발적이었고 그 규모와 기간은 지방에 따라 각기 달랐다. 박해는 특히 2세기에 있어서 조직적이고 오래전부터 준비된 국가의 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쌓인 증오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데치우스에 이르러 비로소 명백한 계획에 따라 추진되었다.
이와 반대로 서민대중은 처음부터 박해에 매우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3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확인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민중의 이러한 증오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것은 맨 먼저 그리고 아주 특별하게 아마 본능적인 반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시적이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대중과 다르고 또 따로 떨어져서 다른 생활을 하며 종교적•윤리적으로 수준이 더 높은 사람들에게 늘 반감을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의 은둔생활은 이러한 혐의를 일으키고 중상하고자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도인들의 비밀집회에서 범죄적인 예배행위가 있고 거기서 참가자들이(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티에스테스가 식탁에 죽인 자기자식들의 고기를 차렸다는것처럼 )인육을 먹는-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심- 티에스테스적인 식사를 하며 또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서로 통하는 관례의“형제자매적” 관계가 그 계기가 되었을지 모를, 근친상간적인 음란행위를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한 자연재해나 공적인 재난, 불행한 사건과 군사적 패배를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신들에게 제물봉헌을 거부한 탓으로 돌렸다. 사람들은 총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인류를 증오한다고 고발하였다.
바로 이 비난은 네로가 자기에게 돌려진 로마시의 방화혐의를 이러한 이유로써 어렵지않게 “인류의 쓰레기”라고 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시킬 수 있었던 만큼 벌써 네로시대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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