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 화 요한 10,22-30(16.4.19)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Jesus teaching in the temple
♣ 관념이 아닌 사랑으로 따르는 신앙 ♣
유다인들의 신앙의 뿌리를 회상시켜 주는 하누카 축제에, 예수님께서는 매서운 겨울 동풍을 막아주는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이때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10,24) 하고 도발하며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이런 요청은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거나 진심으로 그분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바라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아니었고 또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던 관념 속의 메시아상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새 세상을 알려주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원하던 관념속의 메시아, 정치적 해방자로서의 메시아성을 초월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적 동일성을 주장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맡겨 주신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데서 증명됩니다. 양들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는 아들과 협력하십니다.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이신 아버지와 아들은 사랑으로 양들을 돌보고 키웁니다. 이렇듯 양들을 향한 사랑은 두 분의 본질적 동일성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나의 욕구나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메시아가 누구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정의하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내가 필요할 때만 하느님을 찾는다면 진정한 신앙이 아니겠지요. 수동의 영성으로 구분해볼 수 있습니다. 전자가 사랑으로 적극적으로 찾아가고 응답하는 영성이라면, 후자는 주님께 자신을 내어맡기고 사랑으로 기다리며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사랑도 믿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어야 할 사람은 자신들인데도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주시는 예수님께 메시아인지 증명해보이라고 요구하며 큰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참 신앙은 영의 눈으로 사랑이신 아버지와 아들의 그 사랑을 보고, 알아차리며, 받아들여 믿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셔야 한다’라는 관념과 이기적인 마음 안에 갇히지 않도록 깨어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그릇된 생각이 사랑으로 오신 아버지와 아들을 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매순간 사랑으로 나를 부르시는 착한 목자의 사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따르는 참 믿음의 사람이길 희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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