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12,45)라 하십니다.
이어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인간을 위한 구원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생명체에 꼭 필요한 것이 빛입니다.
태초에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시어 빛과 어둠이 갈리고 낮과 밤이 생겨났습니다 (창세 1,2-5).
그렇게 빛과 어둠은 하느님의 창조의 손길 안에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숨쉬며 하느님의 창조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든 조명기구들이 밤을 밝히면서 사람들은 참 빛이 무엇인지 더 자주 헷갈리곤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빛은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유흥가의 현란한 빛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빛이신 그분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행복할 텐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참 빛이 무엇인지 몰라서 마냥 어둠 속에 머물거나 엉뚱한 빛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경우입니다.
온갖 유혹과 쾌락, 돈과 탐욕이라는 화려한 빛이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착각하며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바로 영혼을 밝히고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참 빛이심을 알아보려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빛이심을 알지만 잊고 살기 때문에 어둠 속에 머물 때도 있습니다.
영적 성장을 멈추게 하는 ‘망각의 병’, ‘영적 치매’가 문제인 경우입니다.
망각하는 것은 말씀의 경청과 그분을 바라보는 기도를 통해 빛이신 예수님을 끊임없이 만나고 그분을 회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것에 맛들이고 길들여져 거기에 안주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행복의 맛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어둠 속에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빛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려면 어둠 속에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고 그 어둠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성 프란치스코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제 마음의 어두움을 비추어 주소서.”(십자가 앞에서 드린 기도)라고 하느님께 청해야겠습니다.
내가 어둠 속에 있고, 빛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고 인정할 때 우리는 빛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어둠은 항구한 기도와 자신을 비우고 듣는 말씀의 경청을 통해서 얻어지는 영의 눈으로 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간절히 빛을 갈망하고 보려고 해도 빛을 가로막는 걸림돌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집단적 이기주의, 강력한 권력으로 변해버린 자본가들의 횡포, 불의와 불평등, 인권탄압, 성차별, 구조악, 생명경시의 태도 등이 그런 걸림돌입니다.
빛을 갈망하는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사랑으로 연대하여 이런 악의 세력에 맞서야 할 것입니다.
어둠 속에 있음이, 자기 본성과 욕망과 세속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참빛을 그리워하는 오늘입니다.
오늘도 나의 어둠을 볼 수 있는 은총을 청하고,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행복한 발걸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들어주소서 - 최 안토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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