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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7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2021.05.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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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하십니다.

복음 대목에는 "그러나"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옵니다. 이제는 스승을 믿는다는 제자들에게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 둘 거라고 하시고, 그렇게 제자들이 떠나도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겠지만, "그러나"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시지요. 당신이 세상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에 담긴 반전의 의미에 주목합니다. 인간사 세상 눈에 좋다고 늘 좋을 수만도 없고, 힘들다고 영영 그렇게만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좀 살아본 우리는 체험으로 알지요. 영적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유혹이 선을 가장해 오기도 하고, 은총이 고통의 포장지에 싸여서 오기도 하니까요.

믿음을 고백한 제자들이 곧 스승을 버린다는 사실에 제자들도 적이 놀랐을 겁니다. 아마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강경하게 부인하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이는 곧 현실이 됩니다. 그만큼 인간은 약하고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주님을 떠나도 그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늘 아버지의 현존 가운데를 거니셨으니까요.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게 머물러 온전한 충만함 가운데 하나이십니다. 이 끊어낼 수 없고 희석될 수 없는 유대가 곧 사랑의 성령이시지요.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이 단단한 결속을 더욱 확고히 느끼실 겁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셨듯이 제자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주의를 둘러봐도 세상에 너무나 많은 고통이 널려 있음이 보입니다. 참 마음이 아프지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 테러, 강대국의 자국이기주의, 혐오 범죄, 직장과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고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죽음, 생명 경시와 포기, 기아와 질병, 차별과 착취, 사기 등등 이루 다 나열할 수 없는 고통스런 현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 슬픈 사실은 우리에게 전해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른 채 덮이는 훨씬 더 많은 악이 존재하지요. 과연 악이 득세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고통의 극한을 품으신 분의 말씀입니다. 우리 눈에는 악이 마치 세상을 점령하고 곳곳에서 어둠과 증오의 힘을 과시하며 세력을 넓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주님께서 승리하시고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임을 힘주어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요. 믿음에 희망을 더하고, 희망에 사랑을 더해 덮쳐오는 폭풍과 풍랑을 견디라고요. 당신께서 세상을 이기셨듯이 우리도 승리할 것이라고요.


제1독서에서는 사도들의 선교 활동이 펼쳐집니다.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사도 19,6)
에페소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이 바오로를 만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바오로의 안수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성령을 받게 되지요.


사도들이 비록 세계 각지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지만 성령은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이와 함께하시며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십니다. 에페소에 간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코린토에 있는 아폴로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주님에게서 파견을 받아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함께하시고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며 성령께서 함께하시니까요.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사도 19,7)
사도행전 저자는 이처럼 에페소에서 성령의 안수를 받은 이들의 수를 언급합니다. 열둘은 이스라엘 지파의 숫자이며 예수님 제자의 수로써 완전함을 가리킵니다. 이제 세상 어디서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주님께 선택된 새 이스라엘이 구성되고 확장될 것임을 시사하지요. 열둘은 구약의 하느님 백성으로 고착되어 화석이 되어버린 숫자가 아니라 온 세상의 복음화를 전망하는 가능성의 수입니다.


세상 곳곳에 복음의 빛이 스며들수록 악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자기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힘을 과시할 겁니다. 영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분명 선과 악의 각축장이지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의 존재라도 미약하나마 이 세상에서 선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서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결코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니, 우리는 악에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성부, 성자, 성령의 현존 안에서 희망을 품고 용기 내어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우리와 공동체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약한 이들과 차별받는 이들의 안전을 위해,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의 기쁨을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