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3일 연중 제11주일
2021.06.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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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시는 주님의 전지전능을 관상합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7)
예수님께서 땅에 뿌려진 씨가 수확에 이르는 과정으로 하느님 나라를 비유하십니다. 태초부터 인간은 자연의 흐름을 체험적으로 인식해 왔지요. 그리고 그 체험을 데이터 삼아 지식으로 축적해 생존에 이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제1원인이신 하느님을 빼면 실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로 치장하고 분석해도 그렇지요. 하느님 없이 생성과 성장과 소멸의 원리에 대해서는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요. 하느님의 섭리는 믿지 않는 이에게 "저절로", "우연", "자연발생"일 뿐이지만, 여기에 당신의 의지와 계획과 행위를 "우연" 뒤로 감추시는 하느님의 겸손이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을 살리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는 주체가 드러납니다.
"내가 손수... 심으리라."(에제 17,22)
주님께서 당신 "손수" 하셨다고 두 차례나 반복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 겪는 패망과 유배의 고통을 그저 단순히 누군가의 무능이나 국제정세의 결과 정도로 이해해서는 곤란하지요. 그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힘과 그분의 의지를 깨닫고, 끝내는 그분 마음에까지 가닿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제야 ...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에제 17,24)
주님은 무지하고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이 언젠가는 당신을 알아보게 되리라고 기대하십니다. 역사의 흥망성쇠, 인간의 생로병사에서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시고, 무성하게도 시들게도 하시는 분이 바로 당신이심을 밝히시는 겁니다.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에제 17,24)
주님은 말씀하시고 이루십니다. 그분의 의지가 말씀으로 발설되어 그대로 완성이 이르지요. 온 우주 안에서,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는 무지한 우리의 "우연, 저절로"라는 오해 이면에서 섬세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려 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2코린 5,6-7)
복음 속 농부는 어떻게 그리되는지 몰라도 곡식이 영글면 낫을 대어 수확을 할 줄은 압니다. 알곡이 영근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육의 사람은 실제 육안으로 보이는 것을 보고 판단해 움직입니다. 그 이면의 원리와 본질을 보는 영의 눈은 믿음으로 떠집니다.
영과 육의 실존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때로는 실감하고 또 때로는 놓칩니다. 우리 믿음이 약하고 한결같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고, 욕심과 이기심, 정욕이 이제 겨우 실낱처럼 열린 영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우리 내면과 관계와 세상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속에서도 믿음을 견지할 때, 그 안에서 당신 의지를 완성하시는 하느님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하느님의 일임을 깨닫고 동의하면 "주님이 손수 하신다"는 믿음이 확신으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온 세상, 온 우주, 모든 피조물, 모든 형제자매들 안에서 손수 움직이시는 하느님을 관상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때로는 일그러지고 파괴되는 듯 보여도 부족하나마 선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우리를 통해 하느님 나라는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답니다. 우리가 '숨은 하느님 찾기'를 멈추지 않으면, 주님께서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마르 4,34) 주실 것이니 지치지 말고 함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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