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4일 연중 제14주일
2021.07.0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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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보는지 물으십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마르 6,2)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신 뒤에 쏟아진 반응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신과 집안을 너무 '잘' 알아서 오늘의 모습이 놀랍고 어색했나 봅니다.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3)
고향 사람들의 놀람은 경탄이 아니라 못마땅함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지혜와 기적이 하느님의 좋은 일임에도 그들 인식 안에 단단히 자리잡은 선입견과 편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대목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2,9)
사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가시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차례 주님께 간청하였지만 주님은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도가 이미 넘치도록 은총을 받았고, 오히려 약한 데에서 당신의 힘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는 인간적으로 완벽해지기를 포기하고 자기의 약점을 받아들입니다. 아니,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서 자랑한다고까지 이야기하지요. 그 약점을 통해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권능이 더욱 큰 일을 하시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복음 속 나자렛 고을 사람들이 꼽는 예수님의 결격사유는 어쩌면 그분의 태생적 신분적 약점일 듯합니다. 그들은 아직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보는 눈이 없었던 게지요. 하느님의 눈은 인간의 눈과 다르고, 또 그분의 선택은 인간의 관습이나 합리적 논리성을 초월합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자질이 곧 믿음이지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마르 6,6)
믿음을 거부하는 이들은 기적을 놓칩니다. 설령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믿음이 없으면 한낱 우연일 뿐이지요. 믿음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경탄하고 감사하는 눈을 갖게 하지만, 불신은 어떠한 은총도 당연하다못해 하찮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제1독서는 주님께서 에제키엘을 파견하시는 대목입니다.
"내가 너를 보낸다. .. 그들이 듣든, 또는 ... 듣지 않든, 자기들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에제 2,4-5)
당신 백성이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을 모르시지 않는 주님께서 그들이 어찌 반응할지 아시면서도 예언자를 파견하십니다. 오랜 세월 지속된 당신 백성의 무관심과 반역이 안타깝고 괘씸하기까지 하시면서도, 언젠가는 알아듣고 돌아오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버리시지 않기 때문에 보내고 또 보내십니다.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예언자는 그들이 받아들이건 거부하건 가야 합니다. 가서 전해야 하지요.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은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예레 1,7)는 주님의 말씀처럼, 그것이 예언자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어떻게 반응하건 그건 예언자가 주님과 함께 소화해 나가야 할 몫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을 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 6,4)
그들이 그러리라는 걸 예수님도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 복음사가 역시 복음의 머리글에서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0)고 했지요. 여기서 "당신 땅"은 나자렛 고향만이 아니라 당신 백성 이스라엘, 그리고 역사를 거듭해 주님을 거부해 온 이 세상까지 다 포함합니다.
이것이 예언자요 메시아의 숙명입니다. 하지만 우리 편에서 보면 안타깝긴 해도 슬퍼하긴 이릅니다. 예언자의 현존은 이 세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사랑의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믿는 만큼 우리는 주님 현존 안에서 은총과 기적을 누릴 것입니다. 그분께서 보내시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 약함 너머의 은총을 알아보는 만큼 우리도 그들과 함께 커가고 성장할 것이고요. 또 만일 주님께서 우리를 누군가에게 보내신다면 설령 오해받고 거부당한다 해도, 먼저 똑같은 일을 겪으신 주님과 함께이니 (물론 힘들겠지만) 견딜 수 있을 겁니다. 파견의 역사는 이렇게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곳에서 담대하고 겸손히 머무르며 사랑을 선포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듣는 이들과 믿음의 스파크가 일어난다면 더욱 좋겠지만, 혹 그렇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꿋꿋히 나아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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