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2021.07.0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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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계승하는 열두 사도를 소개합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마태 10,2)
복음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소개합니다. 인척 관계나 직업 등의 특이점을 간략하지만 명확히 서술하면서요. 그들은 영향력 있는 신분이나 제도권 안의 인물들이 아닌, 그저 평범하고 단순한 서민에 가까운 이들이지요.
제1독서는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과 나머지 형제들의 만남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창세 42,21)
막내 벤야민을 제외한 요셉의 이복 형들은 요셉을 무척 시기하여 살해할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하지만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은 이방인들에게 발견되어 이집트에 팔려가게 되었고,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하느님의 보호로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온 세상에 든 기근 때문에 양식을 사러 온 형들을 요셉은 부러 을러매었고, 이 과정에서 형들은 요셉에 대한 자기들의 잘못을 소환합니다. 그 죄의식이 하도 깊어서 닥쳐온 위기를 그 잘못의 결과로 받아들이지요. 시기와 증오가 낳은 폭력은 피해자 못지 않게 가해자에게도 깊은 생채기를 내고 그 자신을 죄로 옭아맨다는 걸 보여 줍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의 뿌리인 열두 형제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 안에서 일어난 험하고 수치스런 사건들도 하느님 구원 계획을 향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복음 속 열두 사도 역시 그들의 자질과 능력이 아니라 은총으로 하느님 구원 계획에 초대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6)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치 구약 백성의 배타적 선민 사상이 그대로 계승된 듯한 오해를 살 수 있지요. 사도들이 받은 구마와 치유, 그리고 하늘 나라의 선포를 이방 민족이나 사마리아가 아닌 이스라엘에게 베풀라고 콕 짚어 명하시니 말입니다.
하지만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방인과 사마리아인들을 포용하시며 구원의 지평을 넓히십니다. 예수님께서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실 리 없으시니 그분 마음을 살펴야겠지요.
제1독서 창세기에 기록된 세계적 기근의 위기 상황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구하시기 위해 먼저 요셉을 이집트로 들여보내십니다. 형들의 시기와 증오는 명백한 악이지만 하느님께서 그조차도 선으로 이끄셨지요.
하느님은 요셉에게 허락하신 지혜를 통해 이스라엘은 물론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민족들까지 구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온 세상에 보편적으로 펼쳐질 하느님 보편적 사랑의 발화점이고 출발선이며 교두보가 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열두 사도로 뽑히자마자 이루어진 첫 파견에서 여러 모로 서툴고 미숙한 사도들이 '그래도' 하느님을 아는 동족에게서 먼저 시작하도록 안배하신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이 구원의 메시지와 활동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기본 관습을 듣고 배운 이스라엘 안에서 무르익고 열매를 맺다가 "때"가 되면 이방신을 섬기는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자연스레 확장될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스라엘부터라고 본다면 사도 바오로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구원 역사의 연속적 맥락이 한 눈에 보일 겁니다.
하느님 백성의 역사는 증오와 용서, 폭력과 사랑, 결핍과 충만이 마치 시소처럼 그리고 파도처럼 반복되며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구약의 열두 선조, 신약의 열두 사도 못지않게 저마다 부족하고 때로는 악하기까지 한 우리가 하느님 자녀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모두를 당신 구원 계획 안에 품으시는 하느님의 거대하고 무량한 사랑의 의지 덕분일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 백성의 역사 안에서 눈에 띄이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점 하나 크기도 못 되는 우리지만, 그분께는 개개인이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이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랍니다. 우리에게 조건없이 쏟아부어진 사랑의 자취들이 모여 하느님 구원 계획은 완성되어 가는 중이니, 실패처럼 보이는 현실 안에서도 희망을 놓지 말고 나아갑시다. 우리는 부족한 죄인이지만, 분명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 안에 들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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