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 사회는 유력한 대선후보로 알려질 정도로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스캔들로 법정구속이 되는 등 심각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서부터 시작된 황당한 일들이 사회도처에서 일어나면서 법과 윤리 기준이 심각하게 변화되고 있음에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팩트가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고소고발이 난무합니다. 여론몰이식의 마녀사냥은 마치 우리가 중세를 살고있는 양, 아니면 과거 공산독재정권이나 조선왕조의 정적 숙청의 암울했던 시대를 살고있는 양, 내 편이 아니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환호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알고보니 나쁜 놈이네" 하면서 돌팔매질도 하고 죽이려 들기까지 합니다.
오늘 예수님도 비슷한 일을 당하십니다.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서 설교하였더니 회중들은 그분의 말씀에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습니다."(루카 4,22) 마치 "바로 이사람이구나!" 할 정도로 신뢰와 존경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 사람 누구네 아들 아냐?" 하고 말하자, 군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고 한꺼번에 신뢰와 존경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이제 더 이상 들을 가치조차 없는 헛소리로 여겨졌고 심지어 불쾌하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마침내 "화가 잔뜩난"(루카 4,28)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고나가 벼랑에 떨어뜨려 죽이려까지 합니다.(루카 4,29)
참으로 황당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감탄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작은 소문 하나에 이렇게 변할 수 있나요? 이게 오늘날 우리가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목격하는 일이고 우리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물론 진정한 존경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나보다 지식이나 권위에 있어 앞서 보이는 것에 대한 굴종적 존경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작은 약점이나 과거를 흠집잡아 그 사람의 인격과 전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쳐 보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지은 죄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상응하는 보속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도 가지고 있지만 약점과 허물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만이 아니라 약점과 한계를 포함해서 모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 때문에 그 사람의 약점과 한계를 마음 아파하며 치유하도록 돕는 일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판단하고 질책하고 단죄하는 것은 하느님께 유보된 일입니다.
그래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종은 죄 외에는 아무것도 못마땅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누가 어떻게 죄를 짓든, 하느님의 종이 이 때문에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흥분하거나 분개한다면, 스스로 과오를 쌓는 것입니다."(영적인 권고 11)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는 문화가 더 확산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과 허물을 들춰냄으로써 그를 망가뜨려 내가 상대적인 승리감으로 도취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죽이는 문화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니 결국 문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진정 백성들을 사랑한 사람이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사랑하는 척 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1코린 13,5)
제가 볼 때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일들은 진정한 사랑의 결핍이 만들어내는 일련의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자기 이익에만 급급하고 진정한 사랑을 외면하고 있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현상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기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더 답답합니다.
정말로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한 모욕과 박해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당합니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하느님이 변호해 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가 너를 그들 앞에서 떨게 할 것이다."(예레 1,17)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9)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언제나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예레 4,30)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는 코린토전서 13장의 사랑의 송가를 모두가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정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고, 그 하느님이 극진히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사랑을 목말라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점에서 이 시대의 사랑의 사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신 하느님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사랑하라고, 말로써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라고 재촉하십니다. 사랑 때문에 기뻐하고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벗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제 설 명절이 시작됩니다. 설 명절은 누구를 씹고 심판하라고 있는 축제는 아니겠지요. 우리 민족이 사랑하는 대축제는 세상살이에 급해 사랑의 정을 충분히 못 나누는 가족 친지들이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또 한해를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랑과 감사의 축제입니다. 벗님 여러분의 가정이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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