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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4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어제 고향 나자렛 사람들로부터 환대와 배척을 받고 당당히 떠나가신 예수님은 다시 갈릴래아에 나타나십니다. 아마도 서쪽 막달라나 티베리아스에서 배를 타고 동쪽 건너편 게라사 쪽으로 이동하신 것 같습니다. 나자렛에서의 실패체험(?)을 하고 여기까지 오시면서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잠시 머물러 봅니다. 좀 마음이 짠합니다.

게라사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에서 나와 흉측한 몰골로 예수님 앞에 나와 따지기 시작합니다. 이건 또 뭐지? 다짜고짜 "난 당신이 누구신지 안다고. 하느님의 아들인 걸 안다고요. 그렇지만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나 좀 그냥 내버려달라."고 떼를 씁니다.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거죠.

이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은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습니다."(마르 5,3-5)

아마도 이 사람은 크게 상처받은 영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꼴보기 싫었을 겁니다. 그래서 무덤에서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곁에 머무는 편이 더 편할 정도였습니다. 그 상처와 그로인한 번민이 한번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면 아무도 것잡을 수 없게 변해 버립니다. 감당이 안 되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견딜 수 없어 자해까지 하게 됩니다. 그 사람 머리 안에는 이미 '군대'(마르 5,9)라 불리는 '2천이나 되는'(5,13) 온갖 번뇌(煩惱)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백팔번뇌'가 아니라 '이천번뇌'나 되니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뇌가 불타도 2천번이나 넘게 불이 타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벗님 여러분, 여러분은 몇 마리의 마귀(번뇌)를 데리고 사시나요? 여러분의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세상 근심걱정, 분노와 흥분, 시기와 질투, 탐욕과 욕심은 얼마나 많나요?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하면 해방될 수 있을까요? 불가(佛家)에서는 수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면 번뇌가 사라지고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요? 저는 그때 뿐이고 또다시 번뇌가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도움은 되겠지만 뿌리까지 치유되긴 어렵습니다.

이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그 뿌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더러운 영, 혹은 마귀는 누구보다도 똑똑한 영물입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하느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볼 정도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예수님의 참 신원을 담박에 알아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느님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와는 아무런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습니다.(마르 5,7 참조) 가능하면 하느님의 손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성향들이 모여서 번뇌를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를 하느님 앞으로 데려놓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그를 쫓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천이 넘는 마귀(번뇌)를 한꺼번에 몰아낼 수 있는 힘은 하느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소위 '구마치유'의 논리가 아니겠습니까?

2천이나 되는 번뇌의 무리가 빠져나간 그 사람은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미 체험한 사람은 굳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수도자, 성직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더 널리 전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5,18-20 참조)

그러나 이러한 번뇌의 마귀가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으로 일거에 치유되는 것을 본 군중들의 태도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기적을 목격하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계기로 삼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5,17) 그게 바로 우리일 수도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기적들을 늘 체험하면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게라사인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마귀(번뇌)를 데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번뇌가 심각해지면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하느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가 더러운 영의 지배를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깊이 마음에 새기는 오늘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