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알라반의 말씀사랑 게라사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에서 나와 흉측한 몰골로 예수님 앞에 나와 따지기 시작합니다. 이건 또 뭐지? 다짜고짜 "난 당신이 누구신지 안다고. 하느님의 아들인 걸 안다고요. 그렇지만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나 좀 그냥 내버려달라."고 떼를 씁니다.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거죠. 이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은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습니다."(마르 5,3-5) 아마도 이 사람은 크게 상처받은 영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꼴보기 싫었을 겁니다. 그래서 무덤에서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 곁에 머무는 편이 더 편할 정도였습니다. 그 상처와 그로인한 번민이 한번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면 아무도 것잡을 수 없게 변해 버립니다. 감당이 안 되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견딜 수 없어 자해까지 하게 됩니다. 그 사람 머리 안에는 이미 '군대'(마르 5,9)라 불리는 '2천이나 되는'(5,13) 온갖 번뇌(煩惱)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백팔번뇌'가 아니라 '이천번뇌'나 되니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뇌가 불타도 2천번이나 넘게 불이 타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벗님 여러분, 여러분은 몇 마리의 마귀(번뇌)를 데리고 사시나요? 여러분의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세상 근심걱정, 분노와 흥분, 시기와 질투, 탐욕과 욕심은 얼마나 많나요?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하면 해방될 수 있을까요? 불가(佛家)에서는 수행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면 번뇌가 사라지고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요? 저는 그때 뿐이고 또다시 번뇌가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도움은 되겠지만 뿌리까지 치유되긴 어렵습니다. 이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그 뿌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더러운 영, 혹은 마귀는 누구보다도 똑똑한 영물입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하느님의 아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볼 정도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예수님의 참 신원을 담박에 알아봅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느님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와는 아무런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습니다.(마르 5,7 참조) 가능하면 하느님의 손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성향들이 모여서 번뇌를 만들어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를 하느님 앞으로 데려놓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그를 쫓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천이 넘는 마귀(번뇌)를 한꺼번에 몰아낼 수 있는 힘은 하느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소위 '구마치유'의 논리가 아니겠습니까? 2천이나 되는 번뇌의 무리가 빠져나간 그 사람은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싶어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미 체험한 사람은 굳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수도자, 성직자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더 널리 전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5,18-20 참조) 그러나 이러한 번뇌의 마귀가 하느님의 자비와 권능으로 일거에 치유되는 것을 본 군중들의 태도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기적을 목격하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계기로 삼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5,17) 그게 바로 우리일 수도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기적들을 늘 체험하면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게라사인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마귀(번뇌)를 데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번뇌가 심각해지면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하느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가 더러운 영의 지배를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깊이 마음에 새기는 오늘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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