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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 바오로 미끼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 오상선 신부님 ~

2월 6일  연중 제4주간 목요일

(홍)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2,18-19.21-24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는 “나는 두렵다.” 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라반의  말씀사랑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요한 1,39)며 직접 부르신 제자들을 양성하시어, 이제 당신이 하시는 일을 제자들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십니다."(마르 6,7)

그러면서 여러 당부를 하시지요. 일단 홀가분하게 가라고 하십니다. 먹고 입고 자는 문제일랑 하느님께 맡기라 하십니다. 제자들이 먼저 가난 가운데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할 줄 알아야 만나게 될 이들에게도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하느님 섭리에 대한 믿음을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행을 떠날 때 짐을 한 보따리 꾸려야 안심하는 우리들을 미리 내다보시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소임 파견받아 떠나는 수도자들의 작은 짐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그리고 나자렛 회당에서 체험했듯이 제자들도 배척과 거부를 당할 수 있다는 걸 솔직히 말씀하시면서, 그럴 땐 어떻게 대응하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기까지 하십니다. "떠날 때에 ...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르 6,11)

발밑의 먼지를 터는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결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부당한 고을,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합당하지 않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발밑의 먼지를 턴다는 것, 그건 얼핏 보기에 '너희 고장에서 묻은 먼지조차도 지니지 않겠다'는 분노의 표시같지만, 가만히 머물러 보니 다른 의미가 다가옵니다.

거부 당하고 배척받은 것에 대해 다투거나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또다시 훌훌 홀가분하게 떠나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말도 듣지 않은"(마르 6,11) 그들에게 행여 품었을지도 모를 서운함과 미움, 슬픔, 아픔 등을 이 자리에서 다 내려놓고 털어내고 가겠다는 뜻으로도 다가옵니다. 사실, 우리의 소임지에서 우리는 늘 기쁨과 보람의 체험과 환대받는 체험만 겪지 않습니다. 때론 예수님이 고향 나자렛이나 이 마을 저 마을들에서 가끔 체험하였듯이 우리도 배척과 몰이해, 심지어 박해와 오해도 받기도 하지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선교 여행에서 그래서 혼자가 아니라 짝(둘씩)이 있다는 건 그래서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선포와 치유로 보람과 행복을 느낄 때는 물론, 이처럼 어두움의 순간이 닥칠 때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능력을 자만하지 말고 늘 하느님께서 서로를 위한 협력자로 주시는 도반들을 고맙게 여기고 감사해야겠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시나이 계약 현장의 분위기와 새 계약으로 이루어진 천상 예루살렘의 모습을 대비시켜 전합니다. 가까이 가기는커녕, 소리를 듣기조차 공포스러웠던 두려움 가득한 현장은, 이제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히브 12,24)과 "그분의 피"가 있는 곳으로, 그래서 자비와 사랑의 심판을 기대하는 곳으로 변모됩니다. 옛 계약의 그늘 아래서는 하느님 현존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그분 계명에 대한 거부가 '징벌과 죽음'으로 이해되었다면, 새 계명의 울타리 안에서는 '용서와 사랑'이라는 새로운 전망으로 드러납니다.

발밑의 먼지를 터는 행위 역시, 정을 떼고 연을 끊고 내쳐버리는 결별의 의미에서, 마음이 불편한 어떤 티끌도 내려놓자는, 그래서 언젠가 다시 만날 때 무에서, 제로 포인트에서 새 희망으로 시작해 보자는 용서와 사랑의 제스춰로 의미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선교 여행의 모든 순간에는 실패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설령 거부와 배척으로 실패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더라도, 가만히 바라보면 새 계약의 열매가 맺어지고 있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파견하십니다. 겸손하게 주님의 섭리만 믿고 가십시오. 발길 닿는대로 살아있는 복음으로 걸어가십시오. 주님께서 그대를 위해 보내주시는 도반을 절대로 무시하거나 귀찮아 하지 말고 서로 의지하며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고 마음을 올바르게 고쳐먹고 사랑하라고 전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친히 파견하시니, 걱정하지 말로 힘차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