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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연중 제 5주간 목요일 / 조명연 신부님 ~

2025년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초등학교 3학년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100km라 생각했을 때, 시속 20km로 날아가는 비둘기는 서울에서 천안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답은 어떻게 될까요? 그러자 철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6시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한숨을 내쉬며 “틀렸지. 100을 20으로 나누니 5시간이 정답이지. 이렇게 쉬운 것도 틀리면 어떻게 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철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비둘기도 서울에서 천안까지 날아가려면 중간에 한 시간 정도는 쉬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선생님 5시간이 정답일까요? 아니면 아이의 6시간이 정답일까요? 아이의 상상력이 더한 대답이 더 정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의 대답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는 세상의 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듣는 것만 진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눈과 귀를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만 하느님의 지혜 안에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을 예수님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도 외면하지 않으셨고, 또 사랑을 강조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부인을 외면합니다. 단순히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말도 하십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어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 7,27)

 

이 부인은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교도로 무시하고, 개로 비유하며 멸시하던 민족 출신의 여인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했던 대로 예수님도 그대로 하신 것입니다. 아마 이 부인 역시 이런 무시와 냉대를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이렇게 대답하지요.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 7,28)

 

예수님의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부인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간절히 주님께 매달릴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만약 사랑이 없다면 주님께 굳이 매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체면만을 생각했다면 모욕적인 수치심에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이 믿음을 만들어 하느님 안에 머물게 해 줍니다.

 

 

오늘의 명언: 도전은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며, 도전의 극복이 인생을 의미있게 한다(조슈아 J.마린).

 

사진설명: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