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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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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사랑의 재현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사도행전의 얘기는 여러모로 의미를 새기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얘기입니다. 먼저 지나가되 지나치지 않는 점입니다. 이는 지나가면서 많이 지나치는 저와 다르지요. 저의 지나침에는 더 예쁘고 더 아름다운 것들을 보다가 보니 눈에 끌리지 않는 것들은 못 보는 비의도적 지나침도 있지만 보기 싫은 것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의도적인 지나침도 있지요. 가끔 아픈 사람을 보면 같이 마음이 아픈 것이 싫어서,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주기 싫어서, 눈을 질끈 감고 서둘러 지나칩니다. 이런 저와 달리 오늘 베드로 사도는 불구자를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봅니다. 그렇습니다. 유심히 보는 점, 이것이 제가 두 번째로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그런데 ‘유심히’라는 말이 어떤 뜻입니까? 한자어의 유심(..
~ 부활팔일 축제 화요일 -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야 / 김찬선 신부님 ~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제 생각에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전혀 하지 않고 사는 사람보다 고민은 많이 하겠지만 삶을 잘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하지 않던가요? 세속적으로도 아무 생각이나 고민 없이 장사하는 사람보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사람이 더 장사를 잘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오늘 사람들은 그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베드로의 답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 회개로 치면 큰 회개의 순간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당신들이 주님을 죽였다고 직공을 합니다. ..
~ 성 목요일 - 기억이 끝나는 순간 , 사랑도 끝난다 / 김찬선 신부님 ~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복음은 얘기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표시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더러운 발까지 씻어주시는 사랑이고, 그 발로 도망칠 제자들의 죄까지 용서해주시는 사랑이며, 아무리 죄를 짓고 도망쳐도 포기치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이고 그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는 안 나옵니다. 대신 두 번째 독서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를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데 성체성사를 세우신 얘기는 요한복음엔 없지만 공관복음에는 모두 나오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또 하나의 표시가 바로 성체성사이고, 이때 끝까지 사랑하..
~ 성주간 수요일 - 제자의 귀와 입과 얼굴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이사야서는 주님의 종의 세 번째 노래인데 참 제자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선 제자의 혀를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의 혀는 어떤 혀입니까? 우리는 혀를 흔히 세 치 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세 치 혀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고도 하고, 그러므로 혀를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사실 혀는 세 치밖에 안 되지만 치명적인 독을 뿜어내는 뱀의 혀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의 기를 살리는 제자의 혀가 될 수도 있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제자의 혀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제자의 혀는 스승이신 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제자의 귀로부터 혀도 있는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시고,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 성 주간 화요일 - 하느님 안에서의 반전 / 김찬선 신부님 ~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오늘 이 말씀에서 ‘그러나’라는 말이 눈에 쏙 들어오며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나’는 앞의 얘기와는 반전을 예고하는 표현이지요. 앞에서는 헛수고, 헛고생을 얘기하다가 그건 그렇지만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이지요. 무엇이 어떻게 그렇지만은 않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은 나를 버리지만 하느님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나의 일과 노력은 인간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헛수고가 되겠지만 영적으로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영광이 될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의 헛수고는 두 가지입니다. 일의 실패와 관계의 실패입니다. 보통은 공들인 일이 아무 성과가 없을 때 헛수고했다고..
~ 성주간 월요일 - 사랑의 순환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주님께서는 삼백 데라리온 어치의 향유를 발에 바르는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아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는 항의와 비판을 받으시는데 제 생각에 이 비판은 날카롭고 정의롭기도 하여 참 뼈아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으신 것은, 유다의 비판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도 같은 생각이셨을 겁니다. 그 비싼 향유를 당신 발에 바르는 것보다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더 원하셨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주님께서 그 행위를 마리아에게 허용하신 것도 당신이 아니라 마리아를 위해서 허용하신 것일 겁니다. 사랑의 허용, 사랑의 수용, 사랑을 귀히 여김. 이것이 주님의 의도입니다. 적당한 비유가 아닐 수 있습니다만 예전의 저는 누가 무엇..
~ 주님 수난 성지주일 - 수난이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읽는 / 김찬선 신부님 ~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오늘 저는 강론 주제를 다음과 같이 잡았습니다. 수모는 받아도 수치를 당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스스로 받지, 억지로 당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수난 주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수난을 수난이라고 쓰고 사랑이라고 읽습니다. 수난(受難)이라는 한자어를 뜻풀이하면 ‘받을 受’, ‘어려울 難’입니다.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려움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받는다는 것이니 수동태(passive)입니다. 그런데 받기는 받되 억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 사순 제 5주간 금요일 - 목적인 사랑과 바탕인 믿음 / 김찬선 신부님 ~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마고르 미싸빕’은 사면초가 상태인 사람, 외톨이, 요즘 말로 왕따란 뜻입니다. 전에도 이에 대해 묵상하면서 저의 비겁함을 고백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저의 비겁함의 고백보다는 ‘마고르 미싸빕’의 대단함을, 그래서 우리도 ‘마고르 미싸빕’이 되어야 함을 묵상하고 나누려고 합니다. 사실 원하지도 않는 외톨이, 왕따가 있고, 우리가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상징하는 ‘마고르 미싸빕’은 의로운 외톨이요 더 나아가 거룩한 왕따이기에 본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인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