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선(레오나르도) OFM (1680) 썸네일형 리스트형 ~ 성 안데르아 김대건 신부님과 성 정하상 바오로 동료순교자 대축일 / 김찬선 신부님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이어가는? 또는 증거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이번 한국 순교 성인 대축일에는 궤변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순교 성인들처럼 꼭 순교해야 하나? 배교한다고 해도 하느님을 배신하는 것은 아닐 수 있지 않은가? 박해상황이 되어 또는 북한에 살게 되어 천주교를 믿지 말라고, 믿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면 굳이 믿겠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겉으로는 안 믿겠다고 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 않는가? 입으로 안 믿는다고 해도 내가 하느님을 믿으면 되지 굳이 믿는다고 하여 죽는.. ~ 연중 제 24주간 목요일 - 다른 은총은 없다 / 김찬선 신부님 ~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오늘 복음에 주님 앞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하나는 남자이고 하는 여자입니다.하나는 죄 없다는 사람이고 하나는 죄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 시몬도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우선 주님을 자기 집에 초대한 것이 훌륭하고,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른 것도 훌륭합니다.사실 스승으로 여겼으니 주님을 초대했겠지요? 그런데 꽤 훌륭하긴 하지만 아직 의로움에 머물지 은총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보통 의로움을 중시하는 자가 은총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그 대표적인 자입니다. 그리고 죄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으로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이 역시 의로움을 중시하는 보통의 바리사이들과 같습니다. .. ~ 연중 제 24주간 수요일 - 사랑이 없으면 / 김찬선 신부님 ~ 사랑이 없으면.첫째 성령의 언어도 요란한 징이거나 소란한 꽹과리이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물놀이에서 징이나 꽹과리는 대단한 악기이고 중요한 악기입니다.그러니 그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 의미 없이 시끄러움뿐일 때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왜 이런 얘기를 한 것입니까? 그것은 앞서 봤듯이 코린토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없이성령에 취해 방언하는 것으로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비판하면서아무리 성령의 은사로 방언해도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소음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방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사랑으로 나타나고 일치로 나타나야.. ~ 한가위 명절 - 정의에 따라 / 김찬선 신부님 ~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었다.”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한가위 명절에 듣는오늘 요엘서, 주님이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셨다는 말씀은그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할 말씀입니다. 정의에 따라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내려주신다니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개신교 번역은 적당히 주신다고 번역하고,우리의 옛날 번역은 흠뻑 주신다고 번역했는데 어떤 뜻입니까? 우리의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주신다는 뜻입니까?아니면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주신다는 뜻입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하느님의 계절 정의에 우리가 따른다면 곧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면그 정의에 따라 하느님께서 적절히 비를 주신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저의 이런 이해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오늘 요엘서는 우리.. ~ 연중 제 24주간 월요일 - 주님의 만찬과 자기 만찬 / 김찬선 신부님 ~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여러분의 모임이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를 아주 따끔하게 야단칩니다.코린토 교회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코린토 교회는 아주 분열적인 교회입니다.오늘은 11장의 말씀인데 3장에서도 바오로는 코린토의 분열을 꾸짖었지요.바오로파니 아폴로파니 하며 교회가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차원에서 분열을 꾸짖고 있습니다.3장이 파당적인 분열이라면 11장은 그런 분열이 아니라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소외시킨 분열입니다. 부자들은 먹을 것을 많이 가져와 자기들끼리 배부르게 먹고,가난한 이들은 아무것도 가져온 것 없어 굶주리고 있었지요. 교회 안에서마저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소외시킨 것입니다.이 얼마나 가난한.. ~ 연중 제 24주일 - 당하고만 살지 않는 / 김찬선 신부님 ~ 지난주에 이어 이사야서는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 예언하고,복음은 예수께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아이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심에도수난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니 베드로가 그리스도께서 그러실 수는 없다고 반박합니다.여기서 저는 베드로를 비난하기보다 그의 편에 서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꼭 수난과 죽임을 당하셔야 하나?사실 이 질문은 수난뿐 아니라 육화와 관련해서도 하는 질문입..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 현양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는 / 김찬선 신부님 ~ “모세가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믿는 사람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는 현양하면서 살지는 않는.이것이 오늘 이 축일을 지내며 묵상하고 제가 여러분과 나누려는 주제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게 된 것은 어제의 일이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요즘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한 교구 신부님과 프란치스칸 영성을 공부하는데어제는 프란치스코에 대한 그 신부님의 감탄에 저도 같이 감탄을 연발하면서뭔가 허무함이랄까 공허함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렇게 대단한데 나는 뭘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요.그러고 보니 저는 이렇게 저를 위안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프란치스코를 사랑한다.나는 프란치스코를 자랑스.. ~ 연중 제 23주간 금요일 - 자기눈을 보는 / 김찬선 신부님 ~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생각에 형제 눈의 티는 보고 내 눈의 들보를 못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작은 것은 보고 큰 것은 못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더 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남의 눈은 보고 내 눈은 안 보는 겁니다. 어제 자기 행복을 점검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만자기 눈을 점검치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라는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안경을 자주 부서트리고, 잃어버리고,안 쓰고 다니고 닦지 않은 채로 다닙니다. 그래서 가끔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집을 나서 불편하고,안경에 먼지나 기름이 껴서 불편한데도 그냥 다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육신의 눈을 점검하지 않는 것은큰 문제가 아니고 그것은 그저 불편함일 뿐..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2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