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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레오나르도)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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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 33주간 토요일 - 하느님을 믿기에 부활을 믿는 우리 / 김찬선 신부님 ~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다.” 사두가이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다는 글을 읽으면서그들은 왜 굳이 주장까지 할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의 저는 제가 주장하는 것도 싫어졌지만남이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더 싫어졌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옛날에는 저도 주장을 많이 했다는 얘기이고,요즘 그것이 싫어진 것이 나이 먹어 철이 든 때문인 것 같아서이 점에 대해서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내용의 주장일지라도 좋지 않다고 저는 생각하고,주장해서는 얻는 것도 별로 없다고 또는 역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주장(主張)이란 내가 주장(主將)이 돼서 주장하는 것이고,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객으로 만드는 것이며,받아들여야 한다고 ..
~ 성모 자헌 축일 - 봉헌과 은총 / 김찬선 신부님 ~ 은총은 선물입니다.거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일의 대가로 받는 것도 아니며,공로의 상급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애써 얻는 게 아니라 거저 받는 것이며,그러기에 능동태가 아니라 완전한 수동태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본래 이런 것인데오늘 성모 자헌 축일의 봉헌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봉헌하여 은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시고,청원하여 응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소서.” 그러니까 봉헌하여 은총을 받는 측면도 있다는 말이고,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모님처럼 자신을 봉헌하여우리도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 되라는 기도입니다. 성모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완전한 순종의 수동태가 되는 것도 은총의 길이지..
~ 연중 제 33주간 수요일 - 사랑이 두려움 몰아내는데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비유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이 임금이 될 귀족을 미워했다고 말씀하십니다.그렇다면 귀족은 자기를 미워하는 종들에게 미나를 맡기는 셈이 됩니다. 저 같으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미나를 맡기지 않을 텐데주님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맡기신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미워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까?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사랑하는 사람이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고,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녀를 위해 뭐든 하고 최선을 다합니다.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주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
~ 연중 제 33주간 화요일 - 타오르게 하소서 / 김찬선 신부님 ~ 성체 분배하며 자주 마주하는 것이 있습니다.그것이 오늘 자캐오 얘기를 묵상하면서 떠올랐습니다. 성체를 모시러 나오는 분들 가운데서 마뜩잖은 모습을 자주 접합니다.걸음이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제게 가까이 와 성체를 받지 않으십니다.제가 다가가거나 손을 내뻗어야만 할 정도로 떨어져 받으시는 겁니다.또 어떤 분들은 손 높이가 너무 낮아 제가 낮춰야만 영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하시기에 제가 불편한 것도 있지만그렇게 영할 거면 뭐 하러 영할까 생각도 됩니다. 혹시 성체를 별로 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지.열망은 없고 네가 주고 싶으면 주라는 식은 아닌지. 그런데 제가 왜 이 얘기를 오늘 길게 하냐 하면오늘 묵시록에서 이렇게 나무라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
~ 연중 제 33주간 월요일 - 다시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묵시록의 시작과 복음에서 우리는 “다시”라는 말을 공통으로 발견합니다.묵시록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을 나무라며 “어디에서 추락했는지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라고 합니다.그리고 복음의 눈먼 이는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그래서 오늘 먼저 다시 사랑하는 것에 관해 성찰하고 묵상코자 합니다.그런데 처음에 했던 사랑을 다시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겠습니다. 그것은 못 이룬 첫사랑을 다시 찾아 만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부부간에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정말 사랑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그래서 그때의 사랑을 다시 하라는 그런 뜻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좋아서 사랑했던 그 사랑을 다시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이제 ..
~ 연중 제 33주일 - 주님은 기쁘게, 죽음은 차분하게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독서와 복음은 종말과 심판의 때가 옴을 얘기합니다.선인이나 악인이나 누구나 죽듯 종말은 누구에게나 오고심판도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 오늘 주일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이런 묵상을 하고 싶습니다.나에게 오늘 것은 종말인가? 주님인가? 이쯤 얘기하면 이미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감이 잡히시겠지요? 많은 사람이 느닷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을 끝냅니다.그렇게 많은 죽음을 보면서도 자기의 끝은 멀리 있는듯합니다.다시 말해서 자기의 종말이 임박해 있음을 보지 못하거나종말에 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고 무관심한 것입니다. 무관심이란 말이 그렇지 않습니까?‘관한 마음이 없는 것’이 무관심인데 죽음에 관한 마음은 없는 것이지요. 다르게 얘기하면 무관심이란 죽음에 관해 진심이 없거나 진심이 아닌..
~ 연중 제 32주간 토요일 - 우리가 지체되지 하느님은 지체하지 않는다 / 김찬선 신부님 ~ 오늘 주님께선 우리의 기도를 지체없이 들어주신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체험하는 기도와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그래서 지체하더라도 들어주시기만 해도 좋겠습니다.기도하는 즉시 들어주신 경험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들어주실 뿐 아니라 지체없이 들어주신다니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께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빨리해주고 싶은 분입니다.그러니까 지체가 없이 들어주신다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지체하시는 것 같아도 주님께서는 지체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바둑으로 치면 장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둑에서 인간은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합니다.어떤 때는 수를 찾느라 이삼십 분 끙끙대고 그런데..
~ 연중 제 32주간 금요일 - 그날에, 나는 어떤 사람? / 김찬선 신부님 ~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의 날?’ 모든 것이 끝장나는 종말의 날?모든 이가 심판받는 심판의 날?모든 것이 구원되는 구원의 날?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 다 맞는 말입니다.그러나 저는 이렇게 얘기하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라고.사람의 아들로 오신 분이 주인님으로 오실 날이라고. 그러면 그날은 나의 날이 아니지요.그리고 종들인 우리 날이 아닙니다. 주인님을 생각지 않고 하던 행위는 그만 중단해야 합니다.주인님을 쏙 빼놓고 갖는 관계는 모두 중단되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은 12장과 16장에서 각기 집사의 비유 얘기가 나옵니다.집사는 종 가운데서도 주인의 재산과 가솔들을 돌보는 종입니다. 그런데 집안을 맡기고 떠났던 주인님이 ..